방송사들의 설 연휴 프로그램은 올해도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출연자들 한복만 입힌 '특집' 문패에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미 케이블TV에서 재탕 삼탕한 영화들 천지였으며, 연휴에 기대했던 따뜻한 드라마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질 낮은 예능 프로그램들만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지상파 편성표는 재방송 투성이였다. 경기 악화를 이유로 방송 3사는 동시에 특집극 제작을 포기했다. 대신 KBS는 '불후의 명곡 스페셜''해피투게더 베스트''김연아 스페셜' 등의 재방송을 설특집이란 이름으로 내보냈다. MBC는 '해피타임 스페셜''무한도전 베스트' 등을, SBS는 '있다!없다? 베스트''골드미스가 간다' 등을 재탕했다.
지상파 3사는 24일 13개, 25일 26개, 26일 42개, 27일 41개 등 나흘 동안 모두 122개의 프로그램에 설특집이라는 명패를 붙였지만 재방송 등을 빼면 설특집으로 여겨지는 프로그램은 20여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일부는 수준 미달이었다. MBC가 26일 방송한 '설특집 스타 격투기 쇼-내 주먹이 운다'는 시청자들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이유로 치고 받는 스타들의 막싸움을 보여줬다.
2006년 추석 때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실신까지 할 정도였지만, 이번에도 실제 싸움을 방불케 하는 출연진의 살벌한 난투극은 시청자들의 마음만 불편하게 만들었다.
안방극장이란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할 것 같다. 설특집 영화 중 KBS가 방영한 '우아한 세계'는 지난해 설 연휴, SBS의 '식객''이장과 군수'는 지난해 추석 메뉴였다.'극락도 살인사건''권순분 여사 납치사건'(KBS), '조폭 마누라'(MBC), '마파도2'(SBS) 등은 명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영화였다.
시청자들은 이 같은 방송사들의 성의없는 편성에 냉정했다. AGB닐슨이 24~27일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상위 5위에는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등 모두 설특집과 관계없는 프로그램들이 올랐다.
20위 내에 든 특집 프로는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SBSㆍ시청률 16.6%), '개그콘서트'(KBS2ㆍ14.2%) 등 5개에 불과했다.
영화 중에서는 SBS의 '그놈 목소리'가 14.1%로 20위에 들었고 MBC의 '무방비도시'(6.7%), KBS2의 '원스어폰어타임'(5.0%) 등 고작 10편의 영화만 시청률 5%를 넘겼다.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트렌드 변화와 경기 악화로 인한 비용 절감을 설특집 방송 부진의 이유로 든다. 그러나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아무리 상업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방송은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시청자가 느끼기에 부실한 편성을 당연한 것으로 넘길 수는 없다"며 "연휴가 마치 방송에서 쉬어가는 시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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