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현실적'이라는 많은 이들의 지적과는 별개로, 이명박 정부의 '7ㆍ4ㆍ7' 공약은 분명 절반의 표심이 선택한 국민적 기대였다. 하지만 첫 해를 지낸 지금, '7% 성장' 목표는 반토막났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는 그 출발선인 2만달러 선마저 반납하고 말았다. 7대 경제강국은커녕, 이러다 영영 여기서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
#2 지난해 미국 달러화와 비교한 원화가치는 1년사이 무려 25.7%나 폭락했다. 영국 파운드화(-27.2%)에 이은 세계 2번째의 불명예 기록.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의 나라였기에 '우리가 왜' 하며 당했던 국민들의 허탈감은 더 컸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새해 들어 원화 절하율(28일 현재 -8.5%)은 세계 1위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뿐 아니라, 역사적인 기로에 서 있기도 하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간의 성장통을 거친 뒤 맞은 세계적 경제위기로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극복이냐, 좌절이냐 사이의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건국 60년, 경제기적 60년
1948년 정부수립 후 60년간 한국 경제가 이룬 성과는 기적에 가깝다. 건국 후 2007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은 300배, 수출액은 1만7,000배, 외환보유액은 7만배나 커졌다. "고도성장을 이룬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경제기적을 이룩한 대표적 사례"라는 세계은행의 평가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그동안 주기적으로 찾아온 위기가 우리에게는 곧 기회였다. 60년대의 절대빈곤, 70~80년대의 1ㆍ2차 오일쇼크, 80년대 후반 노사분규, 97년 외환위기까지…. 한국 경제는 시련을 에너지로 삼아 도약해 온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건국 60년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북한과의 체제경쟁, 모방과 학습을 통한 일본 따라잡기, 2000년대 이후 급부상한 중국경제에 대한 경계 등이 오히려 고도성장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발 빠른 환경 적응은 우리의 또다른 강점. 이는 우리 주력 산업의 변모를 볼 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수출 드라이브 초기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오일쇼크 이후에는 에너지 소비가 적은 전자ㆍ조선으로, 90년대 이후부터는 IT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삼성전자, 포스코,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등 지금의 세계 일류 기업들은 그 자체가 주력산업 변천사의 산물이다.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는 지금, 한국은 역사적으로 다시 한번 일대 변화의 기로에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 수석연구원은 "학습과 모방의 추격전략으로는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며 "차세대 성장주도 산업인 금융, 에너지, 환경ㆍ바이오 등으로 산업을 다각화하고 연구개발과 효율성을 높여 혁신주도형 경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로벌 위기 속 한국경제
지난해 우리 금융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심한 패닉 양상을 보였다. 특히 리먼브러더스 파산 여파와 외환위기설이 극에 달한 10월, 국내 주가는 한 달 사이 33.5% 폭락했고, 1,100원대이던 환율은 1,513원까지 올랐다. 한 때 미국경제와의 탈동조화(디커플링)까지 자신했던 우리 경제였지만 가려져 있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이유는 글로벌 단기자본에 지나치게 기댄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 때문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 후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높은 외국인 주식투자 비중, 금융기관의 단기 편중 채무구조 등이 주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현금(달러)이 급해진 외국인들이 국내 자산을 정리해 나가면서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급등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 여기에 전 국민의 '외환위기 트라우마'는 조그만 루머에도 위기설을 증폭시켜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로 작용했다.
위기 탈출구와 재발방지책은 무엇일까. 황 연구원은 "▦한ㆍ미 통화스와프 등과 같은 국제 공조를 통한 경제안정화 ▦G20 등 국제기구에서의 국가 및 기업 위상 강화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9년 한국 경제는 어느덧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수출 감소라는 외부충격을 이겨낼 만한 자생력(내수) 역시 취약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로 각국에 닥친 충격은 엇비슷하지만 향후 극복 여부는 각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냐 기회냐, 역사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 G20을 뜀틀로/ 국제 금융질서 재편 적극 활용 목소리 키워야
10년 전 'IMF' 경제위기를 맞기 전까지, 우리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름조차 낯선 기관이었다. 실제 지난 수십년간 브레튼우즈, IMF, 월드뱅크 처럼 국제 금융질서를 좌우하던 기관이나 제도는 우리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 그런 점에서 최근 논의중인 국제 금융질서 재편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혼란 속에 도약을 노릴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뜀틀이 바로 G20으로 불리는 선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다. 지난해 11월 첫 회의에서 금융개혁의 원칙에 합의한 각국은 현재 ▦IMF 개혁 ▦세계은행 등 기타 국제금융기관 개혁 ▦규제감독 개선 ▦국제 금융협력 강화 등 4개의 큰 개선 방향을 잡고 4월 영국 런던 회의를 준비중인 상태.
특히 우리나라는 브라질·영국과 함께 향후 G20회의를 주도할 '트로이카 3국'으로 지정돼 기대를 한껏 키우고 있다. 정부도 청와대에 G20조정위원회(사공일 위원장)를 두고, 다음달 중 기획재정부 산하에 G20 기획단을 설치하는 등 적극 준비에 나설 태세다.
전문가들은 치밀한 계산과 철저한 대비 만이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강대 김병주 명예교수는 "이번 G20 회의체는 경제질서로 치면 대공황의 결과로 생긴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64년만에 새 판을 짤 계기"라며 "당분간 이런 기회는 오지 않는 만큼 최고의 인재를 배치해 G20 안에서 새로 짜여질 국제 금융질서에서 한국이 주역으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에도 불구, 여전히 한국은 IMF내 의결권 비중이 1.4%대(18위)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가 필수인 만큼, G20에서의 발언권 강화를 계기로 글로벌 규제입안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상생의 구조로/ 中企 지원·직무급제 등 지속가능 발전 모델 모색
우리 경제의 도약을 가로막는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 뿐만이 아니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체질개선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우리 경제 재도약의 실마리를 '상생의 시장경제'에서 찾는다. 김 연구원은 "1970~80년대 성장에만 치우친 불균형성장에 이어, 지난 10년간이 성장과 분배와의 균형을 찾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함께 커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할 때"라며 "발등의 불을 끄는 응급처방도 중요하지만 상생 가능한 경제체질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후 급속히 이식된 경제제도의 부조화가 상생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액주주 권리와 대기업집단 규제가 강화되자 대기업이 선도적 투자를 꺼리면서 중소기업도 활력을 잃었다. 은행의 건전성 규제 강화는 외형 기준에 맞춘 기계적 대출로 이어져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도 갈수록 정부지원과 임금축소에만 기대게 만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경쟁력 하락, 대ㆍ중소기업간 협력 약화, 투자 및 고용부진 등 경제성과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부작용 치유를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행태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기관은 적극적으로 지원할 기업을 선별하고 중소기업은 과감히 전망없는 사업을 정리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기술협력을 늘려야 하고 근로자 역시 경직된 연공급제를 포기하는 대신, 정년을 늘리는 방향으로 한 발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제도적으로는 지역 저축은행을 활성화시켜 중소기업을 밀착 지원토록 하고 근로자의 직무급제 도입, 직업능력 교육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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