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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오바마가 알려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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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오바마가 알려 주는 것

입력
2009.01.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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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바둑을 잘 둔다. 9단이면 입신(入神), 8단이면 좌조(坐照), 7단이면 구체(具體), 바둑에는 이렇게 단위별로 별칭이 있는데, 오바마는 몇 단쯤일까. 그가 실제로 바둑을 잘 둔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의 행마를 살피면 바둑의 급소와 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정석은 외운 다음 잊어 버리라고 한다. 반복적 기계적인 운석으로는 큰 바둑을 두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세관이며 그 국면에 맞는 '이 한 수'를 찾는 감각이다. 한 수 둘 때마다 맥이 변하는 국면에 맞춰 '지금 여기'에서 반드시 두어야 할 수를 찾고, 행마의 완급을 조절하는 사람이 바둑의 명인이다.

변하는 국면의 '이 한 수' 찾기

오바마는 취임식 다음 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릴레이 전화통화를 했다. '전 세계적 문제에 관한 적극적 외교'의 시동은 지금 이 시점에 미국 대통령이 밟아야 할 수순이다.

그리고 각료들과 참모진을 상대로 한 일종의 '시무식'에서 소득 10만 달러 이상인 보좌진들의 임금 동결, 로비스트 연루 금지 등 백악관 직원들의 솔선수범을 촉구하는 행정부 윤리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바마는 이렇게 백악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선언하면서 "정부가 신뢰를 얻도록 하고 싶고 앞으로도 신뢰를 얻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미국민의 지지율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높고, 세계가 이번처럼 한 사람에게 위기 극복에 관한 기대를 보인 적이 없을 만큼 그에게 의지하는 것은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는 평가 덕분이다. TV로 취임식을 지켜본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도 "절대 진실한 사람으로,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신뢰는 통합의 퍼스낼리티 덕분이기도 하지만, 각료 인선이나 적을 포용하는 자세,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연설과 용어 구사에서 나온다. 취임사가 인상적인 수사(修辭)로 장식된 '듣는 연설'이 아니라 의미를 새겨야 하는 '읽는 연설'인 것도 신뢰를 자아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시대에는 화려한 행마보다 두텁고 정직한 수가 필요한 것이다.

오바마는 취임 전 날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의 쉼터를 찾아 페인트 칠을 하는 자원 봉사를 했다. 모두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자원봉사의 정치이면서 미국을 새롭게 바꿔가는 '신장개업'의 신호다. 부시 정권 말기에 더디게 흐르던 시간이 빠르고 활기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를 살피면 참담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2년째가 되는 지금, 정부는 여전히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 대통령 취임뉴스를 1면 머릿기사에서 밀어낸 용산 철거민 참사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다 들어 있다. 사건과 사고는 언제나 그 시대가 농축된 기호이지만, 의미를 제대로 읽고 대처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

사건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서 보듯 철저하게 편이 갈린 상황에서, 여와 야의 통신은 단절돼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최근 한나라당 연구모임의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말로는 소통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적어도 입법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법은 야당 지도자와 더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임 전에 자신을 비판했던 칼럼니스트들과 식사를 하고, 구제금융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거는 오바마와 대조된다.

통합은 신뢰에 소통을 더해야

기업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 머리와 몸으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서는 왜 그런 공을 들이지 않는 것일까. 정책의 방향을 올바르게 하는 게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敬(경)과 誠(성)이 부족하다. 오바마의 등장은 이 점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통합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신뢰+소통이 통합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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