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입력
2009.01.23 02:01
0 0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놓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사'(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읽을수록 맛이 난다. 자칭 '걸어다니는 국보1호'였던 양주동의 해석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뜻 모를 이두문자로 씌어진 1,400여년 전의 향가 '서동요'(薯童謠)다. 이 짧은 노래에 사랑과 야심, 짓궂은 장난기가 다 들어있다. 무엇보다 그 소박함이 아름다운 사랑 노래다. 나중에 백제 무왕이 되는 맛둥(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이 노래를 지어서 퍼뜨렸고, 결국 두 사람은 결합해 선화공주는 무왕의 비가 됐다는 것이 삼국유사로 전해지는 서동 설화다.

며칠 전 이 서동 설화의 한 배경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내부에서 정확히 1,370년의 세월을 견딘 사리장엄이 21세기의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이뤄진 참으로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이다. 사리를 담은 찬란하고 정교한 금항아리와 함께 미륵사지 석탑의 창건 내력을 금판에 기록한 봉안기도 발견됐다.

그런데 이 봉안기가 문제가 됐다. 봉안기는 미륵사 석탑을 만든 백제 무왕의 왕후를 신라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관리인 좌평 사택덕적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졸지에 서동 설화는 허구로 낙인 찍히는 위기에 처했다. 이 봉안기의 발견이 서동 설화의 진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느니, 역시 역사는 설화보다 힘이 세다느니, 서동 설화가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됐던 익산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과연 그럴까. 실증적인 역사 자료가 전무했던 서동 설화와 미륵사에 관련된 유물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해서 그것만으로 서동 설화를 허구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한 조각의 역사적 사실로 1,400여년이란 세월을 이어온 설화를 송두리째 부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거꾸로 설화 혹은 설화적 상상력이야말로 형해화된 역사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설가 최인호의 <상도> 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간략한 기록밖에 없던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의 생애를 5권 분량의 장편소설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그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가상의 김정희의 그림 '상업지도'를 진짜 그림으로 알았는가 하면, 역시 소설에 나온 '계영배'라는 전설 속의 술잔까지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런 것이 상상력의 힘 혹은 설화의 힘인데, 최인호는 언젠가 기자에게 "문학은 학문과 다른 것이다.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그 영역이야말로 설화적 상상력, 혹은 문학적 로망일 것이다.

작가 이병주의 저 멋드러진,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표현도 다시 떠오른다. 거친 현실에 드러나는 상처 투성이 인간의 근육과 뼈마디, 그것들을 냉엄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역사다. 하지만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달빛 아래서 인간이 내일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건 신화다. 서동 설화는 이미 월광에 물든 우리의 신화다. 미륵사지 석탑 장엄사리와 봉안기의 고고학적 발견은 그 신화를 더 아름답고 은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 허구라고 팽개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