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21일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협상 결렬 방침이 전해지자 나온 시장의 반응이다.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변수는 있었지만 매각 매각주체인 산은과 인수 후보인 한화그룹 모두 애초부터 무리수를 던지며 판을 깼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산은과 한화그룹, 그리고 대우조선까지 이번 협상 결렬로 모두 패배자로 전락할 공산이 커졌다.
■ 왜 무산됐나
결국은 돈 문제였다. 한화는 당초 자기돈 2조원만 갖고 6조5,000억원 짜리 대우조선을 사려고 했다. 사실 정상적 금융 상황이라면, 이 정도 자금조달은 큰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시장이 급속히 경색되면서 한화의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됐다. 매각하려던 자산도 계획보다 반값에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급해진 한화는 지난해말 결국 '인수대금 분할 납부' 또는 '대금 완납 기일(3월말) 연기'를 주장했지만, 산은은 사모펀드구성을 통한 한화그룹 자금 인수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채 한화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문제는 한화의 선택. 산은은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한화는 지나치게 싼 값에 자산을 인수하려 한다며 수정안 제출을 거부했고, 결국 협상은 무산됐다.
■ 협상의 여지는 없었나
돈이 매각협상의 발목을 잡았지만, M&A에서 가장 중요한 '상호 신뢰'가 무너져 협상 자체가 어려웠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이다. 지난해말 한화가 분할 납부나 대금완납 연기를 요구하고, 산은이 본계약을 한달 동안 미뤄줄 때까지만 해도 매각결렬만은 피하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결국 양측은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산은이 사모펀드조성을 통해 자산을 인수하고 3~5년 후 매각차익을 돌려주겠다는 수정제안을 내놓았을 때 한화는 "전향적인 입장변화"라고 해놓고도 충분한 자산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한화가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인수가격 재조정 문제까지 흘리면서 협상자체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한화의 의지부족도 문제지만 산은이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초대형 M&A인데다 사상 초유의 금융경색 사태를 감안할 경우 좀 더 유연한 전략이 필요했는데 지나치게 원칙에만 치중했다는 것이다.
■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매각이 성공했더라면 산은과 한화그룹 모두 윈(Win)-윈(Win)할 수 있는 빅딜이었다. 산은은 현안인 민영화를 위한 목돈 마련이 가능했고, 한화는 세계 3위의 조선사를 품에 안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각결렬로 모두가 상처만 입고 말았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한화그룹이다. 당장 이행보증금으로 낸 3,000억원을 잃게 됐고, M&A로 성장한 대표그룹이라는 이미지에도 먹칠을 하게 됐다. "내 인생의 최대 승부수"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던 김승연 회장 역시 머쓱하게 됐다.
산은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당초 매각주관사(골드만삭스)를 선정한 후 자격문제로 이를 철회하고 자체적으로 M&A를 실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또 한번 능력을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 재매각을 하더라도 매각타이밍을 놓쳐 대우조선 가격이 떨어질 것이 뻔해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대우조선의 가치가 3조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 주인을 맞아 성장한계를 극복하려던 대우조선도 또 다시 '준공기업'으로 남게 됐다. 실사를 거부하며 자기주장만을 고집했던 대우조선 노조도 결과적으로 하나도 얻은 것이 없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현재 당장 1조원 이상의 신규투자가 있어야 생산과 수주활동을 정상화할 수 있는데 매각이 무산돼 적지않은 타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손재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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