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서 경찰이 당시 무리한 진압을 한 흔적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핵심적인 대목인 화재발생 경위와 관련해서는 철거민 농성자와 진압 경찰의 진술이 엇갈려 정확한 진상규명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토끼몰이식 진압작전
검찰에 따르면 경찰 진압에 앞서 농성자들은 망루를 설치하고 수십 통의 시너를 준비하는 등 철저한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이 특공대원 13명을 컨테이너 박스에 태워 옥상에 진입했을 때도 옥상 주변에 있던 30여명의 철거민은 격렬히 저항하다 수세에 물리자 4층 망루로 물러났다.
검찰은 경찰이 농성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망루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무리수'를 뒀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농성자들이 시너를 뿌리는 것을 보고 들어갔으니, (옥상에 수십 통의 시너가 있었던 사실을) 인지하고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진압 경찰관들도 "이미 시너 일부가 바닥에 뿌려진 상태에서 진입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해 경찰이 인화성이 큰 물질에도 아랑곳 없이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경찰은 망루 안으로 진입한 뒤에도 농성자 연행에만 집중한 것으로 조사됐다. 4층으로 된 망루 안에서 경찰은 1층에서 3층까지 차례로 농성자들을 제압한 뒤 4층으로 도망가는 일부 농성자까지 연행하겠다며 몰아 부쳤다. 사실상 퇴로도 없는 '토끼몰이식' 연행작전을 벌이다 경찰이 4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발화원인은 화염병 가능성
사건 진상 규명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 만큼이나 중요한 대목은 발화 원인이다. 화재로 인해 농성자뿐 아니라 진압 경찰관까지 목숨을 잃은 만큼 이번 참사의 법적책임을 가리기 위한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검찰의 최종 결론이 주목된다.
철거민측과 일부 목격자들은 경찰이 망루 진입을 위해 철판을 전기톱으로 뜯던 중 튄 불꽃이 발화점이 됐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그렇다면 진압 전에 불이 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반대로 경찰측은 철거민들이 바닥에 시너가 뿌려진 상태에서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진술하고 있다. 당시 옥상에서 진압팀장 역할을 하다 부상한 경찰특공대원 김양신(31) 경사는 "망루 4층에서 농상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2층으로 물러났다 4층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시위대 쪽에서 화염병 2개가 날아왔고 내가 화염병을 피하자 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불길이 확 치솟았다"고 말했다.
검찰도 경찰측 진술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아직 섣부른 판단을 할 때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화재발생 경위는 진술로만 판단할 수 없다"며 "화재경위 수사가 가장 어려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관련자들 법적 책임은?
진상 규명의 다음 단계는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이다. 화재는 철거민측이 보유하고 있던 화염병과 시너 등 인화물질로 인해 발생했다 하더라도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화재를 촉발한 원인이 됐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느 한쪽에만 현주건조물 방화나 상해치사 등 혐의를 일방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귀책사유가 어느 쪽에 있느냐,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에 따라 사법처리 범위와 수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만일 철거민측이 먼저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거나 경찰 진압에 저항하기 위해 시너 등 인화물질에 불을 붙였을 경우 철거민측이 더 큰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반면 경찰이 화재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철거민들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압박해 화염병을 떨어뜨리게 만들었거나 격렬한 몸싸움 과정에서 화염병이 떨어졌다면 경찰 또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는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팽팽한 공방이 예상된다.
박진석 기자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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