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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현장… 70세 노인, 30년 장사한 거리서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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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현장… 70세 노인, 30년 장사한 거리서 참변

입력
2009.01.2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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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숨진 철거민 5명 중 일부의 신원이 확인되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종일 백방으로 뛰면서도 "설마…" 하며 희소식을 기대했던 유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사고 현장 뒤편 건물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다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꿨던 이상림(70)씨는 막내 아들(36)과 함께 농성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해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아들도 크게 다쳤다.

큰 아들(45)은 "아버지께서 원한 것은 조그만 공터에서라도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다"고 부친의 죽음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그는 "당시 아버지는 망루에 계셨고 동생은 건물 벽에 매달렸다가 떨어진 것 같다. 농성자들은 밑으로 떨어지든지, 죽든지 두 길밖에 없었다"며 강제진압을 비난했다.

또 다른 희생자 양회성(55)씨도 이 지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이었다. 부인 김모씨는 이날 오후 용산경찰서에서 남편 사망 소식을 확인하고 "우리 남편 살려내라"며 울부짖었다.

김씨는 "엊그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 길로 건물에 올라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갔다"고 애통해했다.

이날 아침 일찍 현장에 달려갔지만 남편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애를 태웠던 양씨 가족들은 경찰의 늑장 뒷처리에도 울분을 쏟아냈다.

김씨는 "현장에서 시신을 보여주지 않던 경찰이 뒤늦게 '시신을 찾아가라'고 연락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했다는데 어떻게 가족 동의도 없이 시신을 훼손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 입회 없이 시신 확인은 안 된다'는 병원측의 냉정함과 시신 도착 후에도 몇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은 경찰의 무성의에 분노한 유가족들은 이날 밤 11시50분께 영안실로 몰려가 시신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상림씨 큰 아들은 "어쨌든 빨리만 보게 해달라"고 호소했고, 양씨의 유가족은 "공권력이 죽여놓고 시신 확인도 가로 막는다"고 원통해했다.

한편 사고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4층짜리 건물은 검게 그을리고 외벽 창유리가 모두 깨지는 등 끔찍한 사고 순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경찰의 동태를 살피던 투쟁의 '보루'에서 순식간에 철거민들의 '무덤'으로 변해버린 옥상의 망루는 시커멓게 탄 채 옥상을 두른 외벽에 불안하게 걸쳐 있었다.

옥상 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철거민 가족들은 사망자들의 신원과 부상자들이 실려간 병원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경찰에 원망을 쏟아냈다.

이 지역 주민들과 목격자들은 경찰 진압 당시 40명 안팎이 현장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 주변에서는 "16명이 희생됐는데 경찰이 숨기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 사망자 명단

▲철거민 ▦이상림(70) ▦양회성(55) ▦이성수(50) ▦신원 미상 2명

▲경찰 ▦김남훈(32)

이대혁 기자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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