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철거로 엄동설한에 거리로 쫓겨난 세입자들이 빌딩 옥상에서 시너를 쌓아 놓고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하는 상황'. 누가 봐도 대형 참사가 우려되는데도 경찰이 대화를 생략한 채 굳이 진압을 서두른 이유를 둘러싸고 의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사안이 워낙 중대했기 때문에, 시간을 끌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모처럼 평화로운 시위 분위기가 정착되는 상황에서 2년 1개월 만에 화염병이 서울 도심에 등장한 데다가, 농성 현장이 한강대로에 붙어 있어 교통정체가 빚어지는 등 시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농성 첫 날인 19일 일대 도로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바람에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백동산 용산경찰서장도 20일 브리핑에서 '불법행위를 묵과할 수 없어 경찰을 투입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과거 화염병 투척이나 교통마비등 시민불편 수준이 훨씬 심각했어도 경찰은 초기에는 협상에 주력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을 경우에만 강제진압에 나섰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경찰 관계자도"어떤 상황이든 대화를 앞세우는 것이 당연하지 무작정 진압에 나서는 법은 없다"며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확실히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한데는 이틀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특단의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는게 경찰주변의 일치된 분석이다. 농성자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긴 했지만 대 테러임무를 수행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할만큼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청장이 특단의 결심을 한 배경에 대해서는 독자 판단 또는 상부 지휘 가능성 등으로 분석이 엇갈리지만, 정황상 김청장 스스로의 결심이라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강경 대응으로 나름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는만큼 이번에도 신속한 작전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송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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