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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 경찰진압 1시간 동안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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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 경찰진압 1시간 동안 무슨 일 있었나

입력
2009.01.2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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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찰의 용산 철거민 농성현장 진압 작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른 아침에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농성 시작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경찰병력 18개 중대 1,600여명이 동원돼 한강로 8차선을 차단한 상태에서 특공대 90여명이 투입됐고, 물대포 6대와 대형 조명기를 갖춘 트럭, 10톤짜리 기중기와 컨테이너까지 동원됐다. 현장 상황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이뤄진 이 같은 무모한 작전이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전쟁준비 하는 것 같았다'

경찰의 작전 준비가 완료된 것은 이날 오전 5시 50분. 경찰 400여명이 건물 주위를 에워싸고, 특공대들은 컨테이너를 이용해 옥상으로 진입할 준비를 마쳤다. 주변에는 화재에 대비해 소방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앞서 새벽 1시쯤 건물 1층에 불을 질렀던 용역회사 직원 30여명은 건물 2, 3층으로 몰려가 대기하고 있었다.

건물 주변에서 지켜봤던 김모(53ㆍ여)씨는 "대형 조명기가 켜지고 경찰이 건물을 에워싸 꼭 전쟁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진압 준비는 철저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 장구는 허술했다. 옥상 농성자들이 진압과정에서 추락할 것에 대비해 준비한 것이라고는 고작 건물 주변 도로에 깐 스티로폼 몇 장이 전부였다. 소방차도 대기했다고 하지만, 정작 옥상에서 순식간에 번진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

'특공대 들어오면 자폭할 거야'

오전 6시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철거민들은 모두 밖으로 나오라"는 단 한 차례 경고 방송 이후 진압이 시작됐다. 경찰이 건물 1층으로 진입하자, 4층 건물 옥상에서 화염병이 떨어졌다. 경찰은 살수차 6대를 이용해 물대포로 응사하며 30여분 만에 특공대 50여명을 건물 4층까지 투입했다. 옥상 진입만 남겨놓은 상태.

6시45분께 경찰의 옥상 진입 작전이 시작됐다. 1차로 10톤짜리 기중기가 특공대원 13명을 태운 컨테이너 박스를 건물 옥상으로 끌어 올렸다. 옥상에 도착한 특공대원들과 농성자들은 격렬하게 싸웠다.

당시 상황을 길 건너편 건물에서 지켜본 최모(53)씨는 "철거민들이 '특공대 오지마' '들어오면 자폭하겠다'며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근접 진압에 나서자, 불과 2~3m 거리에서 화염병이 터지는 등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철거민들을 거세게 밀어 부친 결과 10여분 뒤 경찰은 옥상을 둘로 나누었던 문을 연장으로 부수고 망루 앞까지 다가갔다. 순식간에 특공대가 옥상을 장악하는 듯 싶었다.

경찰, 여명 이용 진압 서둘러

하지만 1차 저지선이 뚫린 철거민들은 쫓기듯 3단으로 쌓아 놓은 망루로 물러서며 다시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전 7시10분께 경찰이 망루 1단 앞에 도착하자 궁지에 몰린 농성자들은 망루 위쪽에서 화염병을 아래로 던져 1차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리 소화기를 준비한 경찰의 대응으로 불이 꺼지고 경찰은 망루 2단까지 진입에 성공했다.

10분쯤 뒤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농성자들은 3층 망루로 몰려가 배수진을 쳤다. 농성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갑자기 시너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옥상 바닥은 이미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는데, 쏟아진 시너가 그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신윤철 특공대 1제대장은 "시너 냄새가 바닥에 진동해 위험하다고 판단했지만, 마지막 1층만 남겨둔 상황이어서 작전을 계속 수행했다"고 말했다.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도 "여명을 본격적인 작전시점으로 택했으며 이는 출근길 교통체증이 심한 한강로 등 도심 교통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7시26분께 마지막 3층 망루를 접수하기 위해 돌진했고, 이 때 다시 시너가 뿌려지고 화염병이 던져졌다. 이어 '펑' 소리와 함께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도로 옆에서 당시 상황을 본 우모(43)씨는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서 10m 정도 되는 불기둥과 연기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철거민들은 "화재가 발생한 것은 화염병 때문이 아니라 아래층에서 진압을 돕던 용역업체 직원들이 낸 불 때문"이라고 주장, 화재 원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화재로 망루가 무너지는 순간 경찰은 옥상에서 철수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30분이 넘어선 8시께야 경찰은 현장을 수색, 사망자들을 발견했다.

송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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