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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동요'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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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동요'의 가치

입력
2009.01.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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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동(薯童ㆍ서동) 도령'. 어머니가 용의 정기를 받아 낳았고, 익산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늘 마를 캐 팔러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때는 6세기말. 신라 26대 진평왕에게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셋째 딸 선화 공주(善花公主)가 있었다. 소문은 이웃나라 산골에 사는 서동의 귀에도 들렸다. 서동은 스님으로 변장해 서라벌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눠주는 대신, 자신이 작사ㆍ작곡한 동요 하나를 부르게 한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 가 전하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인 <서동요> 이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을 가 놓고 맛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짧은 한 구절로 된 노래의 위력은 대단했다. 노래를 듣고 대노한 진평왕은 딸을 쫓아냈고, 서동은 큰 힘 안들이고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서동요> 는 참요(讖謠)다. 참요란 미래의 어떤 징후를 암시하는 민요를 말한다. 후삼국시대 이후 각종 문헌에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고려 건국을 예언한 <계림요> 나 후백제의 내분을 예언했다는 <완산요> 가 대표적이다. 여론의 일종인 참요는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서동요> 처럼 어떤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퍼뜨리기도 한다.

▦이순원의 신작 소설집 <첫 눈> 에 실린 단편'푸른 모래의 시간'에 나오는 서라벌사진관 주인의 농담처럼"여기 와서 동네 애들한테 공짜로 마를 구워 팔며 남의 나라 공주를 후려간 사나"인 서동은 백제 30대 무왕이 된다. 당연히 선화 공주도 백제 왕비가 돼 미륵사까지 창건했다고 <삼국유사> 는 전한다. 일연은 이 설화가 계략과 모함에 대한 비난이 아닌 국경을 뛰어넘은'역사적 로맨스'로 남길 바랐다. 이후 무왕이 신라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참요만이 아니다. 설화나 신화도 마찬가지다. <서동요> 의 목적이 노래를 이용한 유언비어로 여자 차지하기였다면, 일연에게는 설화적 기록을 통한 국민화합이 목표였지 않았을까. 후삼국으로 다시 찢어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고려의 최우선 국가 과제가 사회 통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동서 갈등은 심각한 문제였고, 고위층의 결혼만큼 효과적인 '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아름다운 설화도 미륵사지 석탑 안에서 발견한 기록(사리봉안기)으로 이젠 끝날 판이다. 역사는 이렇게 때론 잔인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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