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차기 정부 한반도 정책의 최대 관심사는 북핵 문제다. 핵 물질 시료채취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의 동력을 차기 정부가 복원할 수 있느냐에 따라 북미관계의 기상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북핵문제가 오바마 취임 초기부터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악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오바마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국정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고, 대외관계에서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를 비롯한 중동문제가 화급한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한반도 실무라인 인선이 확정되는 2, 3월 이후에야 북핵문제 협상의 틀이 윤곽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북특사 파견을 포함한 북미 고위급 협상이 6월 이전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다. 여기에는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판단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정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제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에 적극적인 한국 정부와 달리 오바마 정부와 집권 민주당은 한미 FTA를 '불공평한 협정'이라며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특별한 돌파구가 나오지 않는 한 한미 FTA가 올해 내 비준 발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북핵문제
오바마 정부는 대선 승리 이후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통해 '터프하면서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해 북핵 협상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정부의 싱크탱크로 주목받고 있는 미국진보센터(CAP)도 '취임 100일 내 대북특사 파견'을 제안해 오바마 정부의 대북협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북미 양자 고위급 회담도 가동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식적으로 양자회담을 거부했던 조지 W 부시 전 정부와는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이런 기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자의 13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상세히 드러났다. 힐러리는 "6자회담과 양자간 직접 외교를 함께 추구할 것"이라며 "대통령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내가 선택하는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어떤 외국 지도자와도 만날 수 있다"고 해 방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건도 명확히 했다.
그는 과거의 플루토늄 생산은 물론 우라늄 농축 문제, 시리아 등 다른 국가로의 핵확산 여부 등 3대 핵심사안에 대한 검증 불가피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협상의 형식에서는 유연할 수 있지만,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민주당의 외교방향을 재확인한 것으로,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당근과 채찍'의 진폭이 부시 정부보다 훨씬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폐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이다. 이미 북한은 힐러리의 상원 청문회 직전 외무성 담화를 통해 '선 북미관계 정상화, 후 핵폐기' 원칙을 들고나와 '관계정상화 이전 비핵화'를 요구한 오바마 정부의 협상원칙에 정면대응하는 입장을 취했다.
부시 정부에서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태문제연구소 한국학 부소장은 "오바마 정부와의 협상을 앞둔 사전포석"이라며 오바마 정부를 시험하기 위한 협상전술로 해석했다.
한미 FTA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FTA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동차 분야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상태로는 비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힐러리의 인준 청문회와 FTA 소관 상임위인 하원 세입위원회의 찰스 랑겔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됐다.
힐러리는 "자동차 등 분야에서 공정하지 않았다"며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시사했고, 랑겔 위원장도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어떠한 종류의 재협상이나 추가협상도 반대한다는 입장이고 미국 내부에서도 추가협상은 정치적으로 미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 북핵업무 맡을 대북특사 초미 관심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집행할 실무라인은 윤곽이 잡힌 상태다. 우선 주목해야 할 자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과 국무부의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 국방부의 아태담당 차관보 등이다. 여기에 오바마 정부에서는 북핵 업무가 국무부 차관보에서 떨어져 나와, 신설될 것으로 알려진 대북특사로 옮겨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 자리에 누가 임명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는 커트 캠벨 전 국방부 부차관보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국가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소장인 캠벨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이다.
민주당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후보자의 외교안보 자문역을 했다.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에는 국무부에서 동아태 부차관보를 지냈고, 나미비아 대사로도 일한 제프리 베이더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유력시된다. 베이더 연구원은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에서 아시아정책 팀장으로 활동했다. 국방부의 아태 차관보는 월러스 그렉슨 예비역 해병대 중장이 내정됐다.
캠벨 국무부 차관보 내정자와 베이더 NSC 선임 국장 내정자는 북핵문제에서 완전한 검증과 비핵화가 북미관계 진전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캠벨 내정자는 지난해 6월 CNAS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핵 확산활동 등 핵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할 것 같지 않다"며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6자회담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캠벨 내정자는 특히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어 한반도 문제에서 미중 협력을 이끌어내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베이더 내정자는 북미관계 정상화는 비핵화와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대화를 강조해, 오바마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남은 관심은 인선이 유동적인 대북특사 자리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현안이 걸린 중요한 지역에 특사를 임명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북핵 협상에서도 대북특사의 역할과 권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무부 차관보 자리에서 대북특사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점쳐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대북특사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선이 난항을 겪고 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대북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이 대북특사 물망에 오르고 있으나 그 역시 국무장관 자문관을 겸직한다는 조건으로 대북특사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누가 대북특사로 최종 낙점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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