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미륵사의 창건 비밀이 풀렸다. 삼국유사와 설화 등을 통해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년)이 왕비를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졌던 미륵사는 무왕의 왕후에 의해 무왕 재위 40년인 기해년, 즉 서기 639년 전후에 창건됐음이 밝혀졌다.
또 무왕의 왕비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佐平)의 딸이라는 기록이 새롭게 나와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을 해체ㆍ보수하는 과정에서 무왕의 왕후가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舍利莊嚴)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현장을 공개했다.
사리장엄은 석탑 1층의 중심 기둥인 심주(心柱) 윗면 중앙의 사리공(舍利孔) 내부에 들어있었으며, 사리를 담은 금제(金製) 사리호(舍利壺)를 비롯해 석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금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머리꽂이 장식인 은제 관식(冠飾) 등 유물 500여점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의 금판 앞ㆍ뒷면에 총 193자를 음각(陰刻)했으며, 붉게 주칠(朱漆)한 선명한 문자로 미륵사의 창건 내력을 증언했다. 봉안기는 ‘무왕의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과 함께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이라고 밝혔다. 사택은 백제 8대 성(姓)의 하나다. 기해년에 석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미뤄 미륵사는 비슷한 시기에 창건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을 공주 무령왕릉 발굴(1971년), 부여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1993년) 이래 백제 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보고 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1,400여년의 세월을 지나 완벽하게 일괄 출토된 사리장엄은 백제 문화 연구에 새 지평을 여는 국보 중의 국보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익산=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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