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를 매개로 삼은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흔히 왜곡이 생겨 진의가 전달되지 않곤 한다. 연인 간에도 서로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 등으로 인해 뜻이 다르게 전달되는 일도 있다. "아니오"라는 메시지가 온 경우에도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예"인지, "아니오"인지를 추측하는 체계적인 이론이 있다면 참 편하지 않을까.
유선이나 무선으로 통신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왜곡이 발생한다. 전화선과 같은 중간 매개에 외부신호, 잡음이 끼어 들면 본래의 신호에 왜곡을 일으켜 디지털신호의 0을 1로 만들거나 1을 0으로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전달 받은 메시지가 본래의 메시지인가를 확인한 후 자동으로 교정까지 하는 수학이론이 있다. '코딩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수학을 넘어 많은 공학자도 연구하는 분야가 되었다. 가히 소통의 수학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인터넷이 출현한 과정을 보자. 광섬유 등을 통한 초고속 통신은 빠른 속도 뿐 아니라 왜곡도 잘 생기지 않아 믿음직하지만, 잡다한 네트워크들을 묶은 인터넷은 이곳 저곳에서 신호왜곡이 생기는 못 믿을 통신 채널이다. 1980년대에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인터넷 개념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못 미더운 통신채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가벼운 글이야 몰라도 신용카드번호 같은 중요정보를 못 믿을 방식으로 전송하여 엉뚱한 번호가 전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코딩이론이 없었다면 인터넷은 실험실 밖으로 외출할 수 없었던 개념이었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인터넷으로 광범위한 정보교환을 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인터넷의 출현은 문명사적인 사건으로까지 기억될 만한 변화다. 하지만 이것이 20세기 중반 클로드 섀넌의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즉 학자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학문 행위의 결과인 것은 간과되고 있다.
이 이론은 너무 추상적인 수학 이론이라 하여 무시되다가, 우주탐사 과정에서 대기권의 온갖 잡음을 뚫고 지구에 도달한 화성과 목성의 영상신호를 선명하게 복원하는 충격적인 능력을 발휘하면서 그 유용성을 인정 받았다.
그래서 학자들의 학문적 활동에 당대의 유용성 잣대를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무모하며 위험하다. 그 실례가 국가의 연구개발(R&D) 지원정책에 있다는 사실도 그래서 안타깝다. 학문적 활동이 갖는 문화적 가치와, 시대를 뛰어 넘어 국가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을 찬찬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실용적 가치를 우선해야 할 기업의 연구지원방침은 이해하지만, 국가의 연구지원정책은 달라야 하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시절 미국과학재단(NSF)은 수학분야의 연구비를 놀라운 수준으로 증액하였다. 당시 NSF 총재를 지낸 생물학자 리타 콜웰 박사의 신념과 노력으로 2005년 미국 NSF 연구비 총액의 18.1%가 수학분야에 지원되어 물리학 등 타 학문분야와 대등한 수준이 되었다.
한국의 정부연구비에서 수학지원금이 타 분야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한국의 수학교육과 연구의 경쟁력을 걱정스레 보게 된다. 어린 학생들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고 젊은 연구자들이 국내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결과를 내고 있는 것을 볼 때, 수학분야에서 한국은 명백히 큰 잠재력을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문적 성취와 정책적 결단이 결합해 잠재력이 도약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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