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와 모처럼 저녁을 함께 했다. 근 1년 여 만이다. 꽉 짜여진 연구 스케줄 때문에 집과 학교를 오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연구ㆍ강의벌레'가 갑자기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했다. "동료 교수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는 말로 운을 뗀 그는 안식년 문제를 도마에 올렸다.(교수들은 안식년을 '연구년' 으로 표현한다.) 연구 실적은 형편없고 강의 평가 점수도 바닥인 교수들이 때만 되면 안식년을 떠나는 현실을 13년차 공대 교수는 개탄했다.
"인문계열 전공 교수 1명이 지난달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났지. 반년 전부터 '한 1년 놀러 갔다 온다'고 떠들고 다녔다는군. 교수에게 안식년은 뭔가. 지난 교수 생활을 뒤돌아보거나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할지 구상하고, 선진 대학교육도 배워오는 그런 것 아닌가. 학생 등록금으로 보내는 만큼 안식년을 가는 교수 또한 일정 자격을 갖춰야 옳지 않나.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친구는 교수 사회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구성원은 도태되는 추세지만, 교수 자리는 예외라는 말로 들렸다. 불합리한 안식년 제도는 단적인 사례였다. 교수 되고 6~7년만 지나면 1년의 안식년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조건 없이 주는 대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드류 파우스트 미국 하버드대 총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대학의 진정한 힘은 교수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교수 연구력과 강의 실력이 전공을 공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대학 경쟁력의 밑천이 된다는 의미가 함축된 발언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에게도 이미 빨간불은 켜져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세대 한양대 등이 연구 실적이 부진한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식으로 교수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서울대는 교수들의 테뉴어(정년)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뛰어난 연구업적과 강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년 보장은 힘들 것이라는 경고다.
문제는 이런 노력들이 일부 대학들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대학 총장들은 엄포만 놓고 있을 뿐 교수들의 반발을 우려해 주춤하기 일쑤다. 고등교육 전문가들은 "자신을 뽑아준 교수들을 개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총장 직선제 폐단도 지적한다.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과 이현청 상명대 총장의 '용기'는 그래서 단연 주목할 만 하다. 박 총장이 내민 교수 채근 카드는 고속승진제와 조기정년보장제다. 연구업적이 탁월한 교수는 근무연수와 무관하게 일찍 부교수나 정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정년 보장의 절대 요건으로 능력을 택한 것이다.
8년 여동안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낸 이 총장의 경우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을 대상으로 상대평가를 통해 임금을 차등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안식년 대상 교수는 반드시 업적물을 내도록 했고, 앞으로는 일정 연구 실적이 있어야만 안식년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박 총장과 이 총장의 시도에 교수들이 저항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나, 비난의 화살은 교수들에게 겨눠질게 분명하다. 미국 아이비리그대학보다 입학이 더 어렵다는 서울대 경쟁력이 세계 50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교수들이 '철밥통'에 연연해서야 되겠는가.
김진각 사회부 차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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