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1시께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울산시립노인병원. 일본 공무원인 히로시마시청 원폭피해대책본부 나카무라 아키미(55) 원호과장과 아리타니 시게루(50) 계장 등 2명이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김길자(67) 할머니를 방문했다. 그들은 “히로시마의 고이란 동네에서 원폭으로 다친 분이십니까”라며 피폭 여부를 확인했다.
이들의 방한 목적은 원폭 피해자들과의 직접 면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 일본 정부의‘원폭피해자 건강관리수첩’발급을 지원해 주기 위해서다. 이 같은 목적으로 일본 공무원이 한국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김 할머니의 생년월일 등을 다시 꼼꼼히 물은 나카무라 과장은 “확인이 끝났다. 수첩을 일본 영사관을 통해 전달해 드리겠다”며 김 할머니가 듣고 싶어하던 말을 전했다.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일본 공무원들이 한국에 사는 원폭 피해자를 찾은 이유는 지난해 12월 일본의‘피폭자 원호법’등 관계 법률이 개정됐기 때문. 개정된 피폭자 원호법에 의해 이제는 피해자가 일본에 가지 않아도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피폭자 건강관리 수첩’을 발급 받을 수 있게 됐다.
수첩을 발급 받으면 일본 정부로부터 1인당 연간 14만5,000엔까지 의료비 보조와 함께 월 3만3,800엔의 원호수당, 장례비 등도 함께 받을 수 있다.
피폭자 원호법 개정의 이면에는 경남 합천시 고려병원에서 요양 중인 원폭 피해자 정남수(88) 할머니의 외로운 싸움이 있었다. 정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일본에 가서 조사를 받기 어렵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오랜 법정소송 끝에 승소, 법 개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앞서, 나카무라 과장 등은 정 할머니와 부산 사상구 감전동 사상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조기선(84) 할머니도 방문,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이들은 19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참사랑요양병원에 입원 치료 중인 정위두(99) 할머니 등 수도권 지역 원폭 피해자 3명을 추가로 방문, 조사활동을 벌인 뒤 2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나카무라 과장은 “앞으로 많은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개정된 일본 법률의 지원을 받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와 한국 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폭피해자 가운데 수첩을 받지 못한 사람은 200명. 이들 가운데 원폭피해상황 확인증은 있지만 일본에 가지 못해 수첩이 없는 이들이 15명이고, 나머지 185명은 일본 정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천=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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