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한 살 많은 아래 시누이가 내일 드디어 결혼을 합니다. 처음 저 결혼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울 애기씨가 저하고는 전혀 말을 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오빠한테도 할 말만 하고는 마치 저희 부부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습니다. 신혼 때 시댁모임을 다녀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애기씨 때문에 신랑과 티격태격 싸우고 엄청 울었습니다. 인사는 받아줘야 할 것 아닙니까? 전 소심한 A형인데…. 성격 무던하기로 소문난 우리 신랑도 속상했던지 "동생 결혼하면 지 신랑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라며 저를 달래주곤 했지요.
저의 어떤 점이 그녀에게 밉게 보였는지, 무엇이 그녀를 얼음장처럼 차갑게 했는지 사실 전 아직도 모릅니다. 하나뿐인 오빠가 결혼한 것이 서운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저도 오빠를 둔 1남4녀 집안 출신이지만 우리 애기씨처럼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자기 오빠랑 결혼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취급 못 받을 정도의 잘못일까요?
시댁식구는 자그마치 1남8녀, 9남매입니다. 저의 무던한 신랑이 바로 그 1남입니다. 식구만 많으면 뭐합니까. 애기씨가 왜 그러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아니 아는 척 해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습니다.(나몰라 패밀리…) 이쯤 되면 큰시누님이나 어머님께서 둘이 불러놓고 야단을 치시든지, "너희들 왜 그리 지내느냐?"고 중재를 해주시든지, 그러면 속이라도 후련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다행인건 나머지 일곱분이 모두 윗시누님들이신데 모두 둥글둥글 잘 대해주셨다는 거지요. 다만 하나 있는 애기씨가 절 무지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한 겁니다. 그러다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인사하면 받아주기도 하고, 아이 때문에 밥을 못 먹고 있으면 아이를 안고 나가서는 재워서 들어오기도 하고…. 여전히 따뜻한 말 한마디 오가지는 않았지만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댁 가는 일이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조카들도 많은데 유독 우리 아이들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주고… 한 해는 제 생일상을 직접 차려주기도 했답니다.(전 그걸 무슨 훈장처럼 아직까지도 지인들에게 자랑을 해요) 둘째 딸아이 출산 때 새벽녘에 가장 먼저 달려와준 사람도 울 애기씨구요. 시댁에 갈 때면 반찬, 과일을 주섬주섬 친정언니처럼 챙겨서 들려 주는 이도 바로 울 애기씨입니다. 작년 1월1일 이었던가요. 울 애기씨,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새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제 기분 말로 형언 할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솔직히 옛날엔 '그래, 너도 결혼해봐라'그랬는데 지금은 서운하고 아쉽고 그리워지려고까지 합니다. 알아 갈수록 진한 곰국 같고, 막내답지 않게 포용력이 큰 울 애기씨가 애기씨가 결혼을 합니다. 지금은요, 서로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그냥 수줍은 미소만 날립니다. 좀 더 친해지고 싶고 잘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결혼하고 나서 더 가까워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안부라도 물을까 싶어 전화했는데(사실 그것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아직은 어색한 기운에 괜히 쓸데없는 농담으로 전화를 끊고 말았답니다. 울 애기씨는 알고 있을까요? 하나뿐인 올케언니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울 애기씨 정말 좋아하고 믿고있다는 거. 애기씨, 결혼 정말 축하해요!
(추신 - 애기씨 아래 시누이 없는 곳으로 시집가니 좋겠수~. 행복하게 잘 살아요)
서울 송파구 김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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