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들의 희로애락, 시속과 세태에 대한 풍자를 매일매일 200자 원고지 석 장 반으로 풀어내는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가 새 주인을 맞았다. 2008년 2월 12일부터 지난 17일까지 1년여 이 코너를 책임졌던 소설가 김종광(38)씨의 뒤를 이어 소설가 하성란(42)씨가 19일부터 매주 월~토요일 독자들과 만난다.
2003년 3월 소설가 성석제씨가 스타트를 끊은 '길 위의 이야기'는 이후 소설가 김영하 이순원, 시인 황인숙, 소설가 이기호 김종광씨로 이어지며 사유로나 필력으로나 내로라하는 한국의 1급 문사들이 이끌어온 난이다.
매일 주제와 소재를 달리하며, 원고지 석 장 반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에 하루치의 이야기를 담는 '길 위의 이야기'는 사실 필자들로서는 웬만한 장편소설이나 시 쓰기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길 위의 이야기'가 한국일보에만 있는 독특한 형식의, 독자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읽을거리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유다.
일곱번째 필자인 하성란씨는 1996년 등단해 <루빈의 술잔> <웨하스> 등 4권의 소설집과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등 3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중견 소설가다. 내> 삿뽀로> 웨하스> 루빈의>
한국일보문학상(2000)을 비롯해 동인문학상(1999), 현대문학상(2009) 등을 수상한 그는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시선으로 우리 삶의 진실과 허위, 그 경계에 선 일상의 편린들을 포착하고 묘사해내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15일 서울 남산의 한 카페에서 '바통 터치'를 겸해 만난 자리에서 하성란씨와 김종광씨는 '길 위의 이야기' 연재를 맡은 소감과 지난 1년간 집필했던 감회를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씨는 "엄마, 직장인, 아줌마, 아내,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저'라는 인물"이라며 "하루하루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40대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씨가 의식적으로 정치ㆍ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글을 썼다면, 일상 속 소소한 경험을 통해 세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말이었다. "30대 후반의 전업작가로 경험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저에 비해 반경이 넓은 성란 누님은 훨씬 '길 위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김씨는 자신의 뒤를 잇는 하씨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하씨는 자신이 준비한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를 살짝만 열어보여 주었다. 중학교 3학년인 딸과 생후 24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교육과 육아 문제, 일에 녹초가 된 남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일상이 사라져 버린 우리 시대 중년 남성'의 모습, 가자지구의 비극을 남 일 보듯 무심하게 처리하는 우리 언론의 태도 등등이 그의 메모지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둘째를 낳자마자 원고 독촉 전화를 받고 산후조리원에서 글을 쓴 적도 있다"는 하씨에게 일하는 여성의 육아 문제는 특별한 관심사다. 전업작가로 글만 썼던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출판기획 일을 맡아 주중에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 집으로 데려오는 워킹맘 대열에 뛰어들었다.
하씨는 "'길 위의 이야기' 연재는 도처에 울분을 느낄 일이 발생하지만 지리멸렬한 일상에 매몰돼 그것을 내 일같이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며 의욕을 비쳤다.
김종광씨는 "밥줄이 끊겨 솔직히 암담하다"며 특유의 입담으로 집필을 마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성에 상관없이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던 게 글쓰는 이로서 큰 행운이었다"는 그는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점은 좀 아쉽다"고 돌아봤다.
그는 "내가 쓴 글 중에는 정치적인 조롱이 좀 많은 편이었는데 그런 글들보다 아들의 유치원 얘기 같이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를 독자들은 더 많이 기억했던 것 같다"며 하씨에게 "최상의 적임자에게 이 코너를 맡기게 돼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러난다"면서 독자들에 대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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