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우리 가족은 새해 소망을 각자 편지로 쓰기로 했습니다. 큰 아이는 "엄마 아빠, 내 방에 들어오면 안 돼. 누가 보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대"하더니 문을 닫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이는 누가 볼까 손을 가리고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이루고 싶은 꿈을 써 내려 갔습니다. 온 가족 모두 그 때만은 너무나 진지하고 진실했습니다.
1년 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수다 떨기, 가족과 계절마다 여행하기, 할머니댁 자주 가기, 승진하기 등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이룬 것은 한가지도 없었네요. 큰 아이도 편식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머리에서는 음식을 잘 먹으려고 해도 밑에서 받아 주지를 않는다"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비만인 작은 애도 살 뺀다고 했지만 "먹지 않으면 빈혈이 온다"고 할 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새해소망으로 정했습니다. 바로 오래돼 벽지에 얼룩이 지고 어두운 아파트를 새집으로 만드는 거지요.
"창문과 방문, 그리고 목욕탕과 창고문은 밤색으로 하자" "아니, 그냥 화이트로 해요." "좋아, 우리집은 민주주의니까." "벽지는?" "그것도 화이트로요." "그럼 집이 너무 개성이 없지 않을까?" "그래야 좁은 집이 넓게 보여요." "이제 장판만 남았네." "그건 아빠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후회하지 마. 벽지와 문이 흰색이니까 장판은 짙은 회색으로 한다. 두말하면 안돼."
종이에 집 구조를 하나하나 그렸습니다. 벽지와 장판은 인터넷과 대리점 가격을 비교해서 정하고, 페인트도 대리점을 비교해 택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는 기간입니다. 창문 3개와 방문3개, 그리고 욕실문과 창고문 페인트칠은 5시간을, 앞 뒤 베란다는 4시간을, 그래서 총 하루 반 정도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거실과 큰방 작은방 2개의 벽지 바르기와 장판깔기는 모두 4일 정도를 잡았습니다. 일은 3월 중순부터 주말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봄이 오고 새집에 이사 간 기분입니다. 새해 소망치곤 너무 작은가요? 그래도 이 정도면 가족 모두를 위한 가장 큰 일이 아닐까요?
경남 거제시 허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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