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번 그림ㆍ골프파문이 터지기 전까지, 국세청 직원들은 한상률 청장을 '준비된 청장'이라고 불렀다. 몸가짐은 늘 조심스러웠고, 업무에 관한 한 빈틈 없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낙마는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국세청은 조직전체가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한 청장은 구속된 전군표 전 청장의 뒤를 이어, 참여정부 임기가 3개월여 남은 어정쩡한 시점에 취임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자칫 3개월짜리 단명청장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새 정부에서 여러 정치적 고비를 넘기며 재신임을 받는데 성공했다. 한 국세청 간부는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이란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한 청장이 얼마나 몸조심을 했을지 상상해보라. 그건 로비 잘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골프파문은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한 청장이 세정개혁과 조직혁신에 '올인'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납세자 섬김 세정'을 모토로, 그는 ▦기업형 직원성과평가와 인사제도 ▦납세자 세정만족도 조사 ▦기업중심의 세무조사 운용 등 국세청 역사상 전례가 없는 혁신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현 정부의 공공개혁 및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와도 '코드'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 청장은 연말 개각에서도 유임이 확실시 될 만큼 '정치적 세탁'에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사문제와 권력문제가 뒤엉키고 '사모님'들까지 등장하는 그림 파문, 뒤이어 부적절한 골프회동 사실까지 겹치면서 한 청장은 취임 1년2개월만에 옷을 벗게 됐다. 그림파문이 언론에 공개(12일)된 지 불과 닷새 만에 '초고속' 추락을 한 셈이다.
한 청장은 그러나 이번 사퇴가 의혹의 시인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 청장은 16일 사의 표명 후 간부들에게도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가다가 벗어놓은 것처럼 홀가분하다. 하지만 모두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며 도덕적으로 떳떳하다는 뜻을 밝혔다.
의혹의 사실여부는 추후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국세청은 또 한번 오명을 쓰게 됐다. 사실 국세청은 4대 권력기관 중에서도 유독 외풍을 많이 탔고, 실제로 최근 7명의 청장 가운데 '무사히' 공직을 끝낸 경우는 이건춘ㆍ이용섭씨 등 2명에 불과했다. 임채주 전 청장은 '세풍'사건으로 구속됐고, 안정남 전 청장은 건설교통부 장관 영전 한달도 못돼 재산문제로 옷을 벗었다.
손영래 전 청장은 선앤문그룹 사건으로, 이주성 전 청장도 수뢰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특히 전군표 전 청장은 부하직원으로부터 돈을 받아 현직 청장으로 사상 처음 구속되기도 했다. 여기에 세정개혁을 외쳤던 한 청장마저 옷을 벗게 됨에 따라, 국세청은 사실상 조직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의혹의 사실여부를 떠나 어렵게 쌓았던 국민적 신뢰를 다시 잃게 된 것이 가장 걱정스럽다"며 "향후 안팎으로 대대적인 쇄신압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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