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 전방에서 우회전하세요" "시속 60㎞ 구간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전방 신호ㆍ과속 주의구간입니다, 버스전용차선 구간입니다" 주의하세요, 주의하세요."
상냥한 아가씨가 기계 안에 들어앉았다지만 쉬지않고 떠들어대니 여간 귀에 거슬리는 게 아니다. 실제 주행엔 그다지 요긴하지 않는 자질구레한 정보들까지 쏟아지자 머리까지 아파온다. 그런데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진득하게 노트북PC로 작업까지 한다. 쉴새 없이 지나치는 풍경도 한 점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자칭 '21세기 김정호.' 고산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면 이들은 인터넷과 내비게이션, 휴대폰 등에 공급하는 전자지도를 만든다. 소속은 SK마케팅앤컴퍼니 위치기반서비스(LBSㆍLocation Based Service)사업본부 위치정보 팀. 그 중 현장실사담당 이영수(32) 문성웅(30), 관심지점(POIㆍPoint of Interest)담당 박정현(36), 데이터베이스담당 강경일(34)씨를 만났다. 복잡한 업무구분처럼 하는 일도 각기 다르다고 한다.
전자지도의 꽃, '현장실사'
항공ㆍ인공위성 사진 기술이 제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지도제작의 핵심은 여전히 발품. 현장실사팀이 도맡아 한다. 고산 선생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밟아야 하는 탓에 매주 출근은 월요일, 퇴근은 금요일 딱 한 차례씩이라고 한다.
답답한 사무실을 떠나 유유자적 매일같이 출장을 떠나는 삶이라니 부러울 법도 하다. 그러나 손사래부터 친다. "위성항법장치(GPS)에 이동 궤적과 시간이 남기 때문에 딴 짓(?)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문성웅) "정해진 구역을 시간 내 답사하는 것도 빠듯하기"(이영수) 때문이다.
그렇다고 낭만이 빠질 리 없다."전국의 드라마ㆍ영화 촬영장 중 안 가본 곳이 없으니" 자랑할만하고, "은퇴 후엔 지금껏 다닌 전국의 맛집을 집대성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품어본단다.
실사팀 업무는 국립지리정보원 산하 대한측량협회가 만든 원도(原圖)를 놓고 전국을 누비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도는 단순지형과 도로만 나와있는 지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한 사람이 운전하는 사이 다른 한 사람은 도로의 차선 수, 무인단속 카메라, 규정 속도, 톨게이트 요금, 신호체계, 고속 방지턱, 스쿨존 등의 정보를 육안으로 확인한 뒤 일일이 원도에 그려넣는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문성웅)이고 "지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영수)이다.
2인1조, 운전대와 마우스를 번갈아 잡아가면서 이동하는 거리는 하루 평균 300㎞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지도는 포털 사이트의 지도서비스용, 버스ㆍ물류회사의 차량 관제용 지도 등으로 이용된다. 이밖에도 내비게이션용 지도 등 활용 분야는 널리고 널려있다.
단팥빵의 팥, POI
용어는 생소하지만 관심지점(POI)팀은 현장실사팀과 더불어 전자지도 제작의 핵심이다. 실사팀은 발이 부르튼다면 POI팀은 하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는 통에 엉덩이가 퉁퉁 붓는단다. 한결 쉬워보이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박정현)이라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실사팀의 현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극장 식당 지하철역 등 130만건에 달하는 관심지점을 지도에 적용하는 게 POI팀의 업무. 건물의 주소와 전화번호, 경위도 좌표, 건물의 속성 등을 재차 확인한 뒤 전자지도에 반영하는 일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로 인해 전자지도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검색과 길안내 기능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강경일)이다.
각종 민원이 모이는 창구이기도 하다. "우리집이 왜 지도에 없느냐", "새로 생긴 동네 약국 넣어달라", "87동을 찍었는데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안내가 끝나면 어떡하냐" 등등. 대부분은 내비게이션 구입 후 한번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거나 못해서 생긴 해프닝이다. 인터넷 지도나 휴대폰의 내비게이션은 실시간으로 자동 업데이트 되지만 나머지 전자지도는 최소 월 1회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게 POI팀의 조언이다.
국내 주요 건물의 속성을 다루는 탓에 회사 임원실 등의 특별 주문을 받는 곳도 POI팀이다. 예컨대 "A, B를 거쳐 점심은 C에서, 이후 D를 둘러본 뒤 E를 거쳐 회사로 복귀하는 루트를 짜달라"는 주문이 떨어지면 10분 이내에 해당 목적지를 모두 담은 특정 POI가 만들어진다. '회장님의 19일'식으로 명명된 특수문건은 그날 하루만 유효한 POI다.
정보기관도 감시?
최근 3차원(3D) 전자지도가 인기를 끌면서 3D그래픽 팀은 물론, 실사팀과 POI팀에 더욱 일이 많아졌다. 실사팀에겐 보다 꼼꼼한 현장 조사에 사진 촬영이라는 미션이 추가되고, POI팀에겐 보다 정확한 정보 입력 의무가 추가됐기 때문.
3D지도는 주행중인 도로와 주변의 빌딩, 도로표지판, 가로?등 주변환경을 사실적인 3차원 입체영상으로 표현해 운전자가 시각적으로 더욱 편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한 지도. 이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입력해야 하니 오히려 길 막히는 시간대를 골라 현장 조사에 나서야 할 정도"라고 한다.
만드는 지도가 갈수록 세세해지면서 정보기관의 감시도 부담스럽다. "청와대, 군 부대 등 보안이 요구되는 시설이 지도에 올라서는 안되고, 축척 5만분의 1이상의 지도에는 좌표가 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강경일)을 적용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든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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