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가 불을 옮기고 다니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불장난을 반복하겠어요."
17일 밤 울산 현대중공업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봉대산(191.8m). 울산 동구의 행정ㆍ소방ㆍ경찰공무원과 주민들로 꾸려진 의용소방대, 자율방범대 대원 등 200여명이 2~4명씩 조를 이뤄 인적 끊긴 숲 곳곳에서 '매복'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지난달 6일 이후 9차례나 불씨를 던져놓고 귀신처럼 사라진 '봉대산 불다람쥐'를 잡기 위해서다.
지도와 무전기, 손전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수시로 본부에 상황을 보고한다. 야간 순찰 지역이나 매복 위치는 작전에 투입될 때까지 비밀에 부쳐진다. 군 작전을 방불케 한다.
울산 동구에서는 매년 겨울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봉대산 일대에서는 지난해까지 9년간 연 평균 9건, 이번 겨울엔 벌써 9건의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했다.
경찰 등 당국이 봉대산 일대 산불을 '방화'로 보는 것은 ▲바람이 강하고 추운 날 ▲인적 드문 오후 8시 전후나 새벽 시간대에 ▲등산객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 부근에서 ▲며칠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 관계자는 "땅에 불이 붙어 번진 형태는 일부러 불을 냈거나 담뱃불 등 실화 가능성이 높은데, 입산이 통제된 가운데 불이 잇따르는 것을 보면 방화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번 겨울 봉대산에서 처음 불이 난 것은 지난달 6일. 해거름을 넘긴 오후 5시30분께 발생한 이날 산불은 임야 390㎡를 태운 뒤 2시간 만에 진화됐다. 불이 번진 면적이 작아 불씨가 남았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7일 오후 4시께 이 곳에서 100여m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불이 났고, 11일에는 최초 발화지점에서 수㎞ 떨어진 곳에서, 20일과 30일에도 인근 산 자락에서 불이 잇따랐다.
새해 들어서도 9일 시작해 10일, 11일, 13일, 14일까지 하루 이틀 간격으로 불이 계속 났다. 특히 10일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봉대산 능선을 따라 2㎞ 넘게 번져 임야 10㏊를 태웠다.
최근 잇딴 산불에 주민들은 2005년 겨울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그 해 12월부터 이듬해 1월 초까지 봉대산과 인근 염포산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무려 11차례나 잇따라 산림 18㏊를 태웠다. 이때부터 방화범을 일컬어 '봉대산 불다람쥐'라는 말이 생겼다.
이번 겨울에는 관계 당국의 특별 대책이 한단계 높아졌지만, 결과는 속수무책이었다.
행정ㆍ산림ㆍ소방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봉대산은 물론 인근 염포산과 마골산에 대해 매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입산을 금지하고, 매일 밤 10시까지 200여명이 순찰에 나섰는가 하면, 방화범검거 특별 매복조(35명)도 가동했다.
그러나 '불다람쥐'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출귀몰한 방화 놀이를 이어갔다. 경찰도 지역 방화ㆍ실화 전과자, 정신병력자 등의 리스트까지 작성해 저인망식 탐문 수사를 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급기야 박맹우 울산시장은 14일 방화범 신고 포상금을 종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는 등 봉대산 방화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는 경찰, 군 등 3개 기관 합동으로 450명의 '방화범 검거팀'을 구성했다. 또 이날부터 무기한 24시간 입산 금지를 시행한 가운데 매복조를 250여명으로 확대해 매일 밤 투입하고 있다.
시는 특히 방화범을 검거한 시민이나 산불감시원은 청원산림보호직원 등으로 특별채용 하고, 행정공무원은 1호봉 승급이나 승진, 경찰ㆍ소방관은 1계급 특진 요청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연면적 450여㏊에 이르고 오솔길이 지천인 도심 야산을 물 샐 틈 없이 감시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당국의 고민이다.
한 달 넘게 숨바꼭질하듯 반복된 산불 진화와 감시에 동원되느라 구청엔 업무 공백이 생기고 공무원들은 녹초가 돼 있다.
17일 밤부터 18일 오후까지 동구 도시공원과 상황실을 지킨 한 공무원은 "아침에 간간이 비가 내려 반갑더니만 오후 들어 빗발이 굵어져 오늘 밤 '매복근무'가 풀렸다"면서 "경기활성화를 위한 각종 사업의 조기집행 등 연초부터 할 일이 태산인데 산불과 싸우느라 진을 빼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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