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의미를 채 알기도 전 부모에게 버림 받은 한 소녀가 있었다. 다른 여자와 눈이 맞은 아버지가 세 살 때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도 곧 새 삶을 찾아 나섰다. 외할머니가 '생고아'가 된 소녀를 딸로 입양했지만 부모 잃은 외로움은 쉬 가시지 않았다. 키가 껑충했던 소녀는 농구로 '상실의 시간'을 달랬다.
고등학교 시절 현(縣)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할 만큼 소질도 남달랐다. 그러나 정작 대학 전공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23세 되던 해. 뒤늦게 부정(父情)이 사무쳤던 그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본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며 영화에 입문한다. 독학으로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 했지만 그는 곧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감독으로 거듭났다.
올해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4월30일~5월8일)의 옴니버스영화 제작 부문인 '디지털 삼인삼색'에 홍상수 감독,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감독과 함께하게 된 가와세 나오미(40ㆍ河淑直美) 감독. 국내 대중에게는 지극히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1997년 28세의 나이에 첫 장편 극영화인 '수자쿠'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으며, 2007년엔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받은 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지극히 사적인 고독과 그리움을 나직한 독백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편화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와세 감독은 전주영화제의 간판 상품이 된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코마'라는 이름의 35분짜리 영화를 선보인다. 코마(高麗)라는 일본 마을을 찾은 재일동포 3세 남자와 일본인 여자의 교감을 디딤돌 삼아 한일관계와 전통의 계승을 모색한다.
"내 고향인 나라현의 코마는 고구려 유민의 흔적이 남은 작은 마을이다. 내가 마침 이곳을 찾았을 때 디지털 삼인삼색 참여 제안을 받았다. 운명적으로 코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
'코마'는 판소리와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能)를 모티브로 삼았다. "판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한국하면 판소리라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판소리를 처음 접했다. 영혼이 담긴 소리였다.
단순하게 사람의 육성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담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니 더 의미 깊게 느껴졌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판소리를 좋아하는가?"
예상과 달리 그는 "어떤 나라 누구의 연출인지 관심을 두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TV도 멀리한다"고 했지만 인상 깊었던 한국영화를 기억해냈다. "변영주 감독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10여년 전 로테르담영화제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기억도 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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