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은 중독성이 있어요. 이제 와이어는 즐겨 타는 수준이 됐고, 손에 칼이 없으면 허전하죠."
가냘픈 몸매의 정려원이 서커스 기예·검술·쿵푸 등이 등장하는 무협사극에 출연해 격렬한 액션을 소화해 내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하지만 15일 오후 강원도 속초의 사극세트장 시네라마에서 만난 그는 오히려 액션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스태프 70여명과 엑스트라를 포함해 100여명에 이르는 배우들은 바람이 매서운 영하 7도의 강추위 속에서 2월16일 첫 방송되는 SBS 대하사극 '왕녀 자명고' 중 낙랑국 왕 최리의 항복장면을 찍었다.
정려원은 타이틀롤인 자명공주 역. 그는 "액션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밥 많이 먹고 체중도 늘렸다. 근력운동으로 체력 보충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정려원이 컴백작으로 사극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사극은 평생 안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사극이 힘들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고, 호주에서 자라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기 때문. 무엇보다 출연진이 대규모인 사극을 촬영할 때 불가피한 단체생활에 잘 적응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욕구가 망설임을 뛰어넘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내가 작품을 택한 게 아니라 작품이 날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왕녀 자명고'는 설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에 등장하는 자명고가 북이 아니라 실은 예언능력을 지닌 왕녀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낙랑국의 버려진 왕녀지만 국가를 수호하게 되는 운명적 신기(神氣)를 타고난 영웅 자명공주, 사랑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비운의 여인 낙랑공주, 이 둘의 사랑과 왕위계승 사이에서 갈등하는 호동왕자의 이야기다.
극중 자명공주에게서 정려원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호주에서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예인이 됐고,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해 9년째 활동 중인 자신의 삶이 본인의 의지보다는 운명처럼 주어진 임무를 받들며 살아가는 자명공주와 닮았다는 것.
"(연예인이 된 것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지만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어떤 큰 힘이 나를 이끄는 것 같았어요."
자명공주가 나라를 위해 사랑하는 이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도 공감이 간다. 그는 "대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사랑은 사치일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이틀롤이지만 드라마를 혼자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어서 부담은 크지 않다. "지금은 그냥 벅차요. 제가 얼만큼 변할 수 있을지, 또 제 자신에게 어떤 모습이 숨겨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속초=강유진 인턴기자 (이화여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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