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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2> 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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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2> 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

입력
2009.01.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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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내 일상의 평정을 가장 사납게 무너뜨린 것은 최진실의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내 삶의 지침인 '안심입명'이나 '처변불경' 같은 말을 탄지지간에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별일이었다. 지난해 삶을 버린 연예인이 최진실만은 아니었고, 평소 '배우 최진실'한테 홀딱 반해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해에는 또 홍성원, 박경리, 이청준 같은 한국 산문문학의 대가들이 타계했다. 이 죽음들이 남긴 자국은 내 마음에서 이내 희미해졌다. 가령 이청준의 죽음은, 아릿한 슬픔과 함께, 이제 한국문학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구나, 하는 소회를 남겼으나, 내 마음을 거칠게 샐그러뜨리진 않았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대사(大事)는 이런저런 개인들의 죽음이 아니었다. 진짜 큰일은 제6공화국의 지난 20년 개혁에 맞선 이명박식 반동개혁이었고, 그 반동개혁에 맞서는 시민저항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학교의 병영화-서열화, 방송 독차지하기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수만의 서울시민들이 한 철의 밤을 밝히고 또 밝혔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망언과 망동으로 국민을 웃기고 울리고 화나게 하며, 희비극 연예인들의 밥줄을 위협했다.

이런 반동개혁과 시민저항의 소란 속에서도 나는 그럭저럭 내 나름의 안심입명을 실천할 수 있었다. 지난 대선 이후 정치에 대한 냉소가 내 마음을 얽어매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진보진영의 분열과 부진도 학습된 내 심란함을 그저 지속시켰을 뿐, 내 평정을 뒤흔들지 못했다. 나는 시대의 방관자였다.

작업실이 있는 '명박산성' 근처에서 촛불집회를 관찰하던 내 마음의 종종걸음은 내가 미리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 최진실이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단박 내 마음의 파동을 동그라미 밖으로 내몰았다. 가장 가까웠던 이가 죽기라도 한 듯, 내 가슴에 둥그런 구멍 하나가 뚫렸다.

최진실이 삶을 버린 날부터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광화문의 작업실에서, 또는 명륜동이나 신촌의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그녀를, 그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것은 그보다 한 달여 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였다. 오바마가 나를 최진실로부터 끌어냈다.

나는 사적으로 전혀 모르는 외국 정치인의 기념비적 승리에 환호작약하면서야, 역시 사적으로 전혀 몰랐던 여자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에서 얼마쯤 벗어날 수 있었다.

왜 하필 최진실의 죽음이 내게 상실감을 불러일으켰을까? 생전의 그녀와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 일면식도 없다는 말은 옳지 않겠다. 텔레비전이나 영화관 화면에서 익히 그녀를 보았으니까. 오디오-비주얼 세계에서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다.

우리는 어지간한 친분이 있는 지인만큼이나 유명 연예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대중매체가 그들의 무대뿐 아니라 무대 뒤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연예인들에게 아름다운 허구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그들을 발가벗겨 누추한 현실을 드러낸다.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대중예술가들은 결코 신비하지 않다. 우리는 대중매체라는 유리벽을 통해서, 실제의, 또는 연출된 그들의 사생활을 살핀다. 그것은 연예인들이 싫어하는 듯하면서 좋아하는 일이다.

자살이라는 죽음의 특별한 방식 때문에 내가 얼이 빠진 것일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신문지면을 탔던 유명인의 자살들을 나는 덤덤히 스쳐 넘겼으니까. 그러면 최진실은 내게 다른 자살자들과 어떻게 달랐을까?

곰곰 생각 끝에 나는 그 다름을 찾아냈다. 최진실은, 다른 자살자들과 달리, 내 가족이었다. 내 안쓰러운 누이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었다기보다 '만인의 누이'였다.

최진실의 첫 메인 모델 작품인 VTR 광고가 떠오른다.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축구경기를 녹화해놓았느냐 묻자, 아내가 살짝 토라져 "나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거죠?" 라고 항변한다. 남편은 쩔쩔매며 사과하고, 시청자를 향해 아내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그 광고 속의 최진실은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파릇한 나이의 그녀가 행복에 겨워하며 상큼하고 야무진 새댁 역할을 하는 그 광고 덕분에, 그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최진실은 웬만한 TV드라마 주인공 못지않은 대중 스타가 됐다.

이후 최진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큰 역들을 맡았다. 그런데 그녀는 번번이 누군가의 가족으로 등장했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언니이거나 엄마이거나 처형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연인의 얼굴이 아니라 가족의 얼굴이었다.

한 해외입양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아, 그 낯선 스웨덴어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을까? 더빙이었을까?)에서 최진실이 맡았던 역도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대하기 계면쩍은, 가련한 딸이자 누이였다. 성장기의 가난 탓에 수제비를 하도 먹어 '최수제비'라는 별명을 지녔었다는 일화도 그녀와의 가족적 친밀감을 짙푸르게 만들었다.

최진실은 물론 미인이었다.(거듭되는 이 과거형 시제가 내 마음을 후벼판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는 평범하고 살가운 미모였다. 그것은 강수연이나 이영애의 강렬하고 차가운 미모와 달리,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아리따움이었다.

최진실에게도 물론 성적 소구력이 있었으나, 그 소구력을 전도연이나 이효리의 것과 비교할 순 없었다. 요컨대 최진실은 여염집 여자였다. 살림하는 여자였다. '국민요정' 최진실은 살림하는 요정이었던 것이다.

화장품회사 사장이든 전자제품회사 회장이든 아파트 건설업자이든, 최진실과 광고로 이어졌던 자본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상품미학의 한 톱니바퀴로 만든 이 자본주의체제를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지한다.

그것이 인간의 비천한 심성에 가장 들어맞는 체제이므로. 나는 최진실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흔히 과장된 비장함이나 비윤리적 희극성, 비현실성에 감염돼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들과 드라마들에 나온 최진실이라는 누이를 나는 은근히 좋아했다.

그녀가 이혼했을 때, 나는 심란했다. 하지만, 또순이 같은 누이니, 어떻게든 헤쳐나가리라 여겼다. 그녀의 실제 삶과 슬쩍 겹쳐 보였던 텔레비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두고 최진실은 이리 말했다.

"이혼을 하면서 배우로서 끝났구나 생각했다. 재기불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선 배우로서 자존심을 버렸다. 스타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오로지 연기로서 승부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운 좋게 재기할 수 있었다."

톡 튀어나온 그 작은 이마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들끓었을까. '자존심을 버리고'! 혹시라도 '불후의 걸작'이 그녀에게 있었으면, 그녀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결코 허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존심이 그녀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예술에서 '불후의 명작'은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니 대중스타의 자존심이란 피상적이고 허약하기 십상이다. 대중스타는 변덕스런 대중의 한시적 소모품이고, 그래서 그의 자존심은 언제 찢어질지 모를 종이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녀가 삶을 버렸을 때 나는 그녀가 미웠다. 한편으론 삶을 버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헤아려보면서도, 어린 자식들을 둔 어미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돈과 명성과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젊고 아리따웠다. 아무 능력 없이 가난 속으로 팽개쳐진 홀어미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인터넷에서 마주친 최진실의 말들은 가슴 시리다. "아이들을 보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가도, 방에 들어와 혼자 있으면 다시 절망에 빠지는 과정이 반복됐다."

제 삶을 당사자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생겨난 삶을 제 뜻대로 처리하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다. 최진실의 자살이 미웠던 건, 그 자살이 그녀가 진짜 원했던 바가 아니었으리라는 어림짐작 때문이다.

두 아이를 그렇게 아꼈던 여자가, 칡넝쿨 같은 생명력을 지녔던 여자가, 긴 생각 끝에 그런 결정에 이를 수는 없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홧김에 죽음의 세계로 건너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밉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억척스러워 보였던 그녀가 고작 일부 대중의 적의(敵意) 따위에 허망하게 무너진 게 밉다.

한 번도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보지 못했을 우리의 막내누이 최진실. 웬디인 줄로만 알았던, 그러나 팅커벨이기도 했던 진실이. 사랑스러웠던, 내 안타까운 누이 최진실(1968.12.24~ 2008.10.2).

객워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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