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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6> 산업의 지형도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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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6> 산업의 지형도가 바뀐다

입력
2009.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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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오전 6시.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 GM공장에서는 직원 1,100명은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세볼레 타호'의 마지막 공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세볼레 타호 한대가 1시간 만에 조립을 마치고 나온 오전 7시.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1990년 이후 370만대의 대형 SUV를 생산하며 세계1위 자동차회사 GM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이곳은 경쟁력을 상실한 GM의 대표 공장으로 지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2.올해 최악의 업황이 예상되는 전세계 석유화학업계는 중동 기업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원유 수출로만 돈을 벌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중동국들이 막대한 오일달러를 퍼부어 석유화학제품 생산기지 건설을 완료하고, 대규모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전문 기관인 CMAI는 불과 2년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화학기업 '사빅'이 에틸렌 생산부문에서 세계최대 기업인 다우케미칼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전망할 정도로 중동 기업들은 세계 석유화학 업계의 판도 변화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세계 산업 판도까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절대지존으로 군림했던 미국 자동차 빅3는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여부에 따라 생사(生死)가 갈릴 운명에 처했고, 세계 반도체업계는 적자 생산을 계속하며 상대가 먼저 사업을 접기를 기다리는 '치킨게임'에 돌입한 지 오래됐다.

아직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는 않았지만, 산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이로 인한 질서 재편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 시련기를 맞은 만큼 글로벌 산업 재편이 어느 때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빅뱅 앞둔 자동차 업계

산업 재편의 핵심 축은 역시 자동차 산업이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 회사의 몰락과 재편이 가져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이미 지난달 19일 미국 정부로부터 174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수혈받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두 회사는 오는 3월31일까지 의회가 납득할만한 자구계획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파산에 직면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게다가 GM(사브, 험머)과 포드(볼보), 크라이슬러(미니밴, 지프, 닷지)가 자구노력을 위해 내놓은 매물 또한 메머드급이어서 향후 이들의 인수합병(M&A) 향배에 따라 업계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일단 도요타와 르노-닛산 등 일본업체들이 질서 재편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과 중국과 인도, 한국 등 신흥국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분석 등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업계 재편의 결과가 어떻든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결국 미국 자동차회사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처럼 빅3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퇴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확산되는 세계 산업 질서재편 움직임

금융산업을 시작으로 촉발된 각 산업내 신질서 구축은 반도체 업계와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D램 가격 폭락으로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며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미 한계 기업들 간의 인수합병이 일어났다.

지난해 미국의 마이크론과 난야(대만)가 손을 잡은데 이어 일본의 엘피다가 대만의 1위업체 파워칩과 합병하며 시장이 삼성전자-하이닉스-엘피다-마이크론 등 1강3중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 향후 하이닉스를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또 한번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는 포스코의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철강업계의 1위인 아르셀로-미탈이 올해 전세계 공장에서 생산량을 전년보다 30%이상 줄이고, 신일본제철과 US스틸이 일부 사업을 접는 등 사업 축소 움직임 속에서도 포스코는 창사 이래 최대인 6조원의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향후 질서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

또 석유화학업계는 사우디 사빅과 아람코사를 비롯한 중동 국유기업들이 제품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미국-중국-한국 중심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있고, 조선도 기술 경쟁력을 갖춘 한국 대형업체들과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로 양분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 질서 재편의 최대 변수는 보호무역주의

글로벌 산업지형 변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부활이다.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한계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지원과 경쟁국 기업들의 M&A 저지 움직임이 자율 구조조정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 출범하는 오바마 정부는 이미 근로자 보호를 위해 공정무역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자동차 회사에 대한 대규모 지원 방침을 굳힌 상태고, 유럽연합(EU)도 철강 수입 규제 및 중국산 제품에 대한 안정성 검사를 강화하며 벽을 높이고 있다.

또 독일은 미국이 빅3를 계속 지원할 경우 무역전쟁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경고하면서도 폭스바겐이나 BMW 등에 대한 지원에 나설 채비를 갖췄고, 대만은 자국 경제의 핵인 반도체 등 정보통신(IT)기업에 대한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섰다. 러시아도 자동차 수입 관세를 올리고, 인도는 철강수입 관세를 강화하며 보호무역주의에 동참하고 있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자동차 업체가 미국정부의 개입으로 포드나 크라이슬러 자회사를 인수하는데 실패하는 등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질서 재편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보다 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불황을 이긴 기업들

전통적으로 불황은 산업 질서를 바꾸는 강력한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기업이 불황기에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성패가 엇갈렸고, 업종 내 개별 기업의 순위는 요동을 쳤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 중 외환위기와 정보통신(IT)버블 붕괴 이전 성장성과 수익성 부문에서 상위 25%에 속했던 기업 중 3분의2가 경기 회복기에 오히려 중도 탈락하며 재계순위에서 밀리는 아픔을 겪었다.

역대 불황을 성장의 기회로 잡았던 기업의 예를 살펴보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불황극복을 위한 현금 확보였다. 대표적인 곳이 IT공룡 기업이었던 IBM. 2000년 초 IT 버블 붕괴로 시장이 침체되고 주력 사업이던 PC와 하드디스크 판매가 급격히 떨어지자 비핵심 분야에 대한 과감한 매각을 통해 재무유연성을 확보했다.

2002년 하드디스크 부문을 일본 히타치에 매각하고, 2004년 PC부문은 중국의 레노버에 팔면서 현금을 확보한 IBM은 이후 비즈니스 솔루션 확보와 IT컨설팅 사업에 집중하며 '하드웨어 회사'에서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홍콩의 부동산 개발 회사인 허치슨 암포아도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치자 모든 자산을 담보로 20억달러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후 불황기에 접어들어 무선통신, 호텔, 항만에 집중투자하며 거대 재벌로 성장했다.

연구ㆍ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브라운관 제조업체 코닝은 불황기에 R&D투자로 재탄생한 대표 기업이다.

코닝은 2001년 광통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100억달러를 투자한 광섬유 사업에서 5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후 코닝은 전세계 직원의 절반을 해고하고 12개 공장을 폐쇄하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R&D투자만은 예외였다. 매출액의 10%는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켰고, 특히 연구개발비의 30%는 '인내자금'으로 분류해 중장기 사업 연구에 투입했다. 그리고 2008년 구조조정 7년만에 세계 액정 TV용 유리기판시장의 50%를 점유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일본의 신일본제철도 장기불황에 시달리던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순이익의 70%에 달하는 4,000억엔을 투자하며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실제 2007년 말 철강관련 국제특허가 1,038건으로 세계 1위인 아르셀로-미탈(32건)의 30배가 넘는다.

특히 미래성장 동력확보를 위한 '소프트 경쟁력확보(고부가가치화)'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스타벅스가 2000년대 초 미국시장에서 식품 회사들이 가격인하를 통한 출혈 경쟁에 나서자, 반대로 가격은 높이고 무선인터넷서비스, 카드서비스 등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시장 기반을 확고히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황도 과거의 사례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현금확보지만 이후 시장지배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 중요해 질 것"이라며 "세계각국이 펼치고 있는 녹색성장 정책에 맞는 전략수립이 기업 성패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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