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푸코네 베이커리, 자활 반죽·희망 굽기 "꿈이 빵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푸코네 베이커리, 자활 반죽·희망 굽기 "꿈이 빵빵"

입력
2009.01.19 08:45
0 0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의 쪽방이 즐비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골목 언덕배기엔 특별한 빵가게가 있다. 여성 장애인 직업훈련 기관인 '성프란치스꼬장애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이곳 이름은 '푸코네 베이커리'. 지적장애를 겪는 20, 30대 여성 9명이 빵과 쿠키를 만들어 팔며 자활의 꿈을 꾸는 곳이다.

14일 오전 복지관 별관에 자리한 82㎡(25평) 규모의 제빵소엔 흰 제복과 빨간 앞치마의 장애 여성들이 작업대에 둘러서서 밀가루 반죽, 계란 풀기, 건포도 다지기 등에 몰두하고 있었다.

원래 오전엔 빵, 오후엔 쿠키를 만들지만 이날은 종일 쿠키를 만들었다. 이틀 뒤 한 정부 기관에 쿠키 세트 50여 개를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말연시라 큰 주문이 자주 들어온다. 작업 속도가 정상인보다 떨어지다 보니 주문을 맞추려면 분발해야 한다.

푸코네 식구들은 1년 전만 해도 복지관 본관의 작업장에서 일했다. 쇼핑백 조립, 다이어리 포장 등 단순 임가공으로, 다른 직업 훈련생 22명은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더 나은 자활 사업을 궁리하던 복지관장 정 스텔라 수녀는 제과점을 떠올렸다. 장애 여성들이 '고급' 기술을 익히고, 수익금으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장애 정도가 덜한 7명이 우선 선발돼 지난해 1월부터 두 달 간 제빵 학원을 다녔고, 4월 제빵소를 열었다. 9월엔 본관에 매장을 열었다. 네티즌, 카드사 회원 등의 십시일반 성금 덕에 제대로 된 시설을 갖췄다. 한 광고회사는 제품 심볼을 무료로 만들어줬다.

유명 호텔 제빵사 출신으로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재원(40)씨는 거듭 제자들을 칭찬했다. "머리보단 몸으로 익히는 일이다 보니 지적장애인들의 장점이 돋보입니다.

융통성은 좀 떨어지지만 원칙대로, 꾀를 부리지 않고 일하니까요." 먹거리를 만드는 만큼 청결을 늘 강조하는데, 너무 자주 씻어 탈이라고. 김씨는 "데코레이션(장식 작업)만 서툴 뿐, 혼자서 모든 제빵 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친구가 둘이나 된다"며 "빵 모양을 낼 때 뛰어난 미적 감각을 발휘하는 걸 보며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점심 때도 반죽과 오븐 작업을 계속해야 해서 푸코네는 교대로 식사를 했다. 최정은(22ㆍ가명), 김채연(26ㆍ가명)씨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한때 체중이 80㎏를 훨씬 넘었다는 최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30㎏ 이상 뺐다"고 말했다.

뜻밖의 사고를 겪은 뒤 생긴 폭식 습관을 이겨낼 의욕이 생긴 것이다. 다시 날씬해진 아가씨는 화장 등 미용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녀와 단짝인 김씨는 다른 한 명과 지난달 푸코네에 합류했다. 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4개월 간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다.

우리밀에 무농약 포도를 가미한 반죽을 경단 모양으로 빚는 걸로 오후 작업이 시작됐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빅뱅, 원더걸스 등 연예인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 영락없는 '신세대 제빵소'다. 주의력을 요하는 오븐 작업은 오혜진(31ㆍ가명)씨 몫이다. 거스름돈 계산이 가능해 본관 매장에서 일하는 정진영(37ㆍ가명)씨를 빼면 오씨가 푸코네 맏언니이다.

처음엔 빵을 태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지금은 오븐뿐 아니라 어떤 일도 척척 해낸다. 작업장 운영 책임자인 김덕수 시설장은 "단추 공장에 취업했다가 적응을 못했던 혜진씨가 제빵에 남다른 흥미를 보이고 있다"며 "대형 제과점 등에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푸코네의 월 매출은 400만~500만 원. 매장이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대부분 주문 판매다. 설탕, 쇼트닝, 글루텐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 달고 바삭한 맛은 덜하지만 다행히 "담백하고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천천히 퍼지고 있다.

판매액에서 재료비를 제한 수익은 9명에게 균등 지급된다. 성탄절 수요가 몰려 최고 매출을 올린 지난달엔 1인당 17만8,000원의 월급을 받았다. 밀가루 값이 50%가량 오른 탓에 기대만큼 수익이 안 났지만, 그래도 임가공 작업으로 받던 3만여 원엔 비할 바가 아니다.

매일 7시간을 서서 일하는 고된 노동에도 푸코네 식구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규칙을 어겼을 때 본관 작업장으로 보내는 걸 가장 무서운 벌로 여길 정도다. 김 시설장은 "무엇보다 의기소침하던 친구들이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개점 2년차 푸코네의 목표는 월 매출 1,000만 원, 월급 30만 원 달성. 더 큰 계획이 있다. 디지털단지 재개발로 복지관이 인근으로 이사하는 2011년엔 카페를 차리려 한다. 식당 청소나 설거지 등 저임금 단순직 외엔 지적장애 여성에게 열린 일터가 없으니 한 번 도전해볼 만하다.

오븐이 작동 종료 신호를 울리고, 김이 모락거리는 '포도쿠키'가 완성됐다. 이젠 '초코 랑그드샤'(고양이 혀 모양의 쿠키)를 만들자, 푸코네는 다시금 팔을 걷어붙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