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붕익(50)씨는 콘센트 등 배선 기구 전문생산업체인 (주)위너스의 공장장 겸 연구소장이다. 지난해 11월에 지금의 회사에 들어온 장씨가 재취업 성공의 으뜸 비결로 꼽은 것은 '발품'이었다. 취업박람회를 비롯해 구직 알선기관 등 일자리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이 돌아다닐수록 재취업의 문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춥다고 집안에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구직도 마찬가지죠. 실직 기간에는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지고, 주눅 들기 쉬운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밖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부딪혀야 자신감도 생기고 좋은 정보도 많이 얻어요."
1984년 대우통신에 입사한 장씨는 통신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운 뒤, 2004년 인터넷 통신 네트워크 장비 개발 업체를 세워 독립했다. 당시 통신 산업이 호황을 구가한 덕에 장씨의 회사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로 회사를 정리해야 했고, 장씨는 그 과정에서 큰 빚을 지며 실업자가 됐다.
"하루아침에 밑바닥에 떨어진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고선 절대 모를 겁니다. 사람 만나기도 싫고, 모든 게 절망이죠. 설상가상으로, 대학 간 아들은 못난 아버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대 갔어요."
재기는 힘들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시작한 실내골프연습장은 문을 연 지 얼마 안돼 문을 닫아야 했고, 또 다시 이를 악물고 일식집을 차렸지만 이마저도 노력에 비해 결실이 없어 지난해 초에 사업을 접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헤드헌팅 회사에 이력서 수십통을 보냈다. 단 한 곳도 연락이 없었다."절대 실망하지 않았어요. 그 때부터 더 의욕이 생기면서 발바닥에 땀나도록 여기저기로 뛰기 시작했어요."
집 근처 고용지원센터를 찾아 재취업 교육을 신청했다. 3일간의 교육을 통해 취업을 위한 효과적인 의사소통법을 익혔다. 그는 고용지원센터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 있는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에도 찾아가 이력서 쓰는 법과 면접 요령 등 구직 기술을 배웠다. "취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간다"는 것이 장씨의 생각이었다.
두 곳을 다니며 자신감을 회복한 장씨가 발길을 돌린 곳은 각종 취업박람회. "길을 걷다 우연히 지역 취업박람회 개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봤어요. 바로 박람회장으로 뛰어갔죠." 막상 취업박람회라는 곳에 가보니 장씨 또래가 할 수 있는 일은 월급 100만원 정도의 생산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실망하기엔 일렀다. 취업박람회가 열리는 곳은 모두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오는 곳이 지금의 회사였다. 두 명이 올라온 최종 면접을 뚫고 당당히 입사했다.
장씨는 구직자들에게 "열악한 회사라도 일단 들어가면 새로운 길이 있다"며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라"고 당부했다.
김일환 고용정보원 홍보협력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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