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가족, 친구, 연인과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하는 등 들떠 있을 성탄절. 권력기관장인 국세청장이 무엇이 아쉬워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그것도 공휴일에 서울서 승용차로 족히 다섯 시간은 걸리는 경북 경주에서 하루 종일 골프를 치고, 대구의 고급 횟집에 이어 유흥주점에까지 옮겨 다니며 어울렸을까.
한상률 국세청장의 성탄절 행적이 알려지면서 모임의 성격과 참석자 면면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일단 한 청장이 지난달 25일 경주와 대구에서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신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된다.
한 청장은 오전 11시부터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영양ㆍ영덕ㆍ봉화ㆍ울진),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김은호 중소기업이업종교류회 대구경북연합회장과 한 조를 이뤄 골프를 쳤다.
한 청장을 수행한 본청 간부와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장, 관할 경주세무서장, 이날 저녁 대구 모임을 주선한 손승락 동대구세무서장이 다른 한 조를 이뤄 뒤따랐다.
최 회장은 포항지역 유력인사이며 김 회장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고 강 의원은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사람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현 정부에서 출세하려면 이들과 친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을 제외하고는 한 청장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모임이 인사 로비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당사자들은 적극 부인하고 있다.
골프를 마친 한 청장은 오후 대구로 이동, 손 서장이 주선한 수성구 두산동 D횟집과 A유흥주점에서 '포항 사람들'과 저녁시간을 보냈다.
저녁 모임에는 한 청장과 손 서장, 이 대통령의 동서이며 경북고 총동창회 부회장인 신기옥씨, 산부인과 의사로 유명한 정영식 건보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장, 원성수 재대구포항향우회장 5명이 함께 했다.
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정씨는 이 대통령과 동지상고 동기동창이다. 원씨를 포함해 이들 3명은 이날 불참한 다른 한 명과 함께 대구에서 '포항 4인방'으로 통하는 인물들이다.
D횟집은 대구지역 최고급 횟집 중 하나이며, A주점은 접대부들이 룸을 돌아가며 서비스하고 별도의 팁 없이 주대의 20%를 봉사료로 받는 이른바 '주임제' 유흥주점이다. 서비스가 깔끔하고 인근 룸살롱에 비해 술값이 싼 편이어서 기관장급 인사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한 청장이 '충성주'를 올리며 인사청탁을 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과장된 소문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포항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며 '이심전심'이 있을 수는 있어도 명색이 국세청장이 무릎 꿇고 탁자에 이마를 박는 충성주를 마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오히려 한 청장의 인사 로비 자리이기보다는 본청 요직 진출을 노리는 포항 출신 손 서장이 자신의 인사청탁을 위해 평소 호형호제 하는 4인방 중 한 명을 통해 대구에서 '끗발 있는 사람'과의 모임을 주선했고, 한 청장도 참석대상자 면면을 보고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모임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국세청장이 지방에 내려온 김에 손 서장이 상견례를 위해 저녁자리를 마련한 것"이라며 "대구모임 비용은 손 서장이 알아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한 상견례였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세청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경주모임에 참석한 3명과 대구모임에 참석한 3명 모두 포항 사람이어서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포항=이정훈 기자 jhlee01@hk.co.kr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