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 법안전쟁 과정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추진했던 중점법안 상당수에 대해 '청부입법'이라고 공격했다.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인데 '정부발의'로 하지 않고 '의원발의' 로 한다는 점을 비난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이 '청부입법' 용어를 쓰면서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원내대표는 12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에서 "정부가 여당 의원들 뒤에 숨어서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청부입법"이라며 "이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정부가 필요하면 완벽하게 절차를 거쳐서 제대로 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달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여당 의원 이름 빌려서 법안처리를 쉽게 하려고만 하지 말라는 취지다.
여당 원내대표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40조)고 명시하면서도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52조)며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의원입법'과 '정부입법'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의원입법은 의원 10명의 동의만 있으면 손쉽게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반면 정부입법은 훨씬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관계부처 및 기관 협의,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라는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한다. 길면 120여 일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의원들에게 협조 요청, 필요한 법안 상당수를 '의원발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한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내용이 민감할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번 법안전쟁에서도 여당의 중점법안 85개 중 정부입법으로 추진됐다가 나중에 의원입법으로 바뀐 케이스가 국가균형발전법, 한국산업은행법 등 19건이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국회 상황이 어지러운 틈을 타 끼워넣기 식으로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해 온 정부 관계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의원의 협조를 구해 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만은 없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행정부의 권한이 너무 비대하다는 차원에서 정부입법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논의도 많다"며 "정부가 의원의 협조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국회의 입법권 존중으로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자신들의 편의만을 위해 부담스러운 법안을 의원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의원발의를 이용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