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의 조그만 섬에서 자랐기에 유난히 염소와 가까웠다. 우유는 구경도 못했지만 염소 젖은 실컷 마셨다. 쇠고기 돼지고기는 육지에 와서 맛보았으나 염소고기는 물리도록 먹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누구나 염소를 고아 먹었고, 그러면 그 아이는 100일만 되어도 모두가 "벌써 첫돌이 됐느냐?"고 물을 정도로 잘 컸다. '염소 띠'를 굳이 '양 띠'라고 하는 도시 사람들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 염소들이 애물단지가 됐고, 당국이 '염소 떼와의 전쟁'을 선포했다(한국일보 14일자 11면). 무인도에 방목된 염소들이 섬을 초토화하기 때문이란다.
■염소(goat)와 양(sheep)은 엄연히 다르지만 용어는 더러 헷갈린다. 고려시대 처음으로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 goat였고, 한자로 산양(山羊)이었다. sheep는 면양(綿羊)이다. 둘은 분류상 목(目)ㆍ과(科)까지 같고, 속(屬)만 다르니 사촌 격이다. 모양과 서식지에 따라 구분하여 각자 40종류 정도씩 분화됐다. 산양이 가축으로서 소와 용도가 비슷한데 암ㆍ수 모두 긴 수염을 달고 있어 수염 난 소, 즉 '염(髥)소'라는 이름이 일반화했다. 가축 아닌 야생 염소만을 산양이라 일컫는데, 설악산 깊은 골짜기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217호가 그것이다.
■염소의 사촌인 양은 순한 동물의 대명사로 쓰인다. 그러나 염소란 놈은 원래 성질이 고약해 '염소(얌생이) 심보'나 '염소 고집'이란 말까지 만들어 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고, 조심성이 많아 공격성향이 높다. 하지만 풀 나무껍질 등 식물성은 무엇이든 잘 먹고(심지어 두루말이 화장지도 간식으로 먹음), 인간에게 주는 것은 소에 못지않게 많고 다양하다. 게다가 생후 3~4개월이면 번식이 가능하고, 배태 기간도 5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인류가 농경생활로 정착하기 전 유랑할 때부터 가장 먼저 데리고 다닌 가축이 개였고, 소 말보다 염소가 먼저였다.
■무인도에 몇 마리를 풀어 놓고 잊고 있다가 몇 년 뒤 가보면 저절로 떼로 변해 있었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섬 주민들의 소중한 부수입이 됐고, '무공해 식품'으로 육지의 친지들에게 귀중한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해상국립공원만 해도 52개 무인도에 1,600여 마리가 활개치고 있다니, 그 먹성에 그 번식력으로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인류가 BC 6000년 경부터 함께 살아온 동물인데 효과적 관리방안이 없을 수 없다. 가축과의 전쟁이 마구잡이로 잡아 없애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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