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투자자문 김민국(33), 최준철(33) 두 대표는 주식이 폭락했던 지난해 연말'투자 파일'을 꺼냈다. 바둑을 두고 난 뒤 복기(復棋)하듯 10년 동안 투자했던 종목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만약 다시 투자한다면 어떤 전략을 택했을 지를 따져봤다.
회사 설립 후 처음 겪는 위기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가치투자'라는 초심을 다지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도 가치투자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손을 잡았던 그 때의 각오를 떠올렸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가졌던 두 사람은 2000년'서울대 투자연구회' 동아리에서 만났다. 전공은 달랐지만(김 대표는 경제학, 최 대표는 경영학) 기업의 가치와 실적을 통해 저평가된 싼 주식을 찾아내고 그 가치가 가격에 반영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에 푹 빠진 두 사람은 동업을 시작했다.
가치투자라는 말 자체가 낯설었던 당시 이들은 직접 찾아 낸 '좋은 기업'에 대한 보고서와 포트폴리오를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고 책('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가치투자가 쉬워지는 V차트')과 신문('대학투자저널')을 펴냈다. 둘은 2001년 VIP 펀드라는 공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직접 투자에 나섰고 9ㆍ11테러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종자돈 수 천만원을 수 백억원으로 불려 '대학생 투자 귀재'로 불리며 스타로 떠올랐다.
2003년 두 사람은 VIP 투자자문을 설립했다. 20대 후반에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자산운용사 대신 독립을 택한 이유를 묻자 김 대표는 "가치투자는 장기투자를 통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회사에서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가치투자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회사 이름도 가치투자 전도사(Value Investment Pioneer)로 지었다.
호응은 대단했다. 150억원 가지고 회사를 세운 지 3년 만에 1,000억원을 확보했고 현재 고객 250명과 3,000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SK사태, 신용카드 사태 등을 이겨낸 성과였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누적 해지율은 9%대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그 만큼 투자자들이 이들을 믿는다는 것.
비록 지난해 변변치 않은 성적을 냈지만 설립 초기 자금을 맡긴 고객들의 누적 수익률은 160%를 뛰어 넘었고 업계에서는 '무서운 청년들'이라 불린다. "돈 잘 불려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사람 중 절반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무작정 투자자를 늘리기 보다는 자신들의 투자 원칙을 이해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만 받아들인다는 나름의 원칙 때문.
최 대표는 "남들보다 먼저 좋은 기업을 찾아내 값이 쌀 때 주식을 사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면서 주식회사 동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알짜 중견기업 동서식품을 자회사로 두고 있고 배당도 많이 해주는 등 지표들이 상당히 좋았다"라며"하지만 코스닥 등록 회사라 주목을 덜 받았고 기업 탐방을 허용하지 않아 정보가 없는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렸다"고 했다. 두 사람은 철저한 분석을 통해 동서가 저평가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했고 주식을 적극 사들였다. 이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본 동서는 꾸준히 주가가 오르며 관심 종목 중 하나로 꼽혔다.
김 대표는 "잘 되는 것을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외면하는 것을 잘 살펴 숨은 진주 였음을 증명해 보이는 게 가치투자"라고 강조했다. 이들 역시 20여 명의 펀드 매니저들과 함께 1달에 30회 이상 기업 탐방을 다니며 발품을 판다. 이들이 '황제 주' 삼성전자 주식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것도 변화무쌍한 반도체 시장에서는 기업의 가치를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올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또 다른 기회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어디나 서비스는 비슷하기 때문에 고객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게 될 것"이라면서 "가치투자라는 우리 만의 브랜드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은 충분하다"라고 자신했다.
올해 두 사람은 짝꿍으로 살아온 지 꼭 10년 째다. 혼자였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건강한 의견 충돌을 즐기고 상대방이 단점을 지적하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게 업계에서 유일하게 공동 대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나이에 대한 편견(어린 애들이 뭘 알겠어), 가치 투자에 대한 편견(미국에서나 되지 우리는 아니야) 등에 맞설 수 있는 힘도 짝꿍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했다.
그 믿음은 쉬 깨질 것 같지 않다. 30년, 40년이 지난 후에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한 방에서 나란히 놓인 책상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그 때는 업계의 기린아(麒麟兒)가 아닌 둘의 이름을 딴 가치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전설(傳說)로 남는 것이 목표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믿고 따르는 '워렌 버핏' 처럼 말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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