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 구호엔 소망이 담긴다.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산 뒤 2,3일만 앓다 죽는 것)'든, '이대로(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든, '나가자(나라 가정 개인을 위해)' 든 시대적 유행 구호일수록 더욱 그렇다. 경제위기를 맞아 요즘 정부에선 '위기는 기회다'가 자주 선창 된다고 한다.
얼마 전 모임에서 건배구호를 놓고 얘기한 적이 있다. 경제는 어렵지만 모두 새해 건강과 건승을 다지자면서 잔을 들었는데, 마땅한 구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때 대기업 인사담당임원인 한 선배가 '위하여'가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위하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건배구호. 아무래도 식상해 보였다.
하지만 그 선배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그냥 흔한 '위하여'가 아니라, '위 하이어(we hire)=위 하여'라고 했다. 다시 말해 '사람을 뽑자'는 말. 모쪼록 일자리가 좀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올해는 '위 하여'를 건배 구호로 했으면 한다는 뜻이었다.
조어(造語)도 재치 넘쳤지만, 그 자체 백번 옳은 말이었다. 2009년 한국경제에서 과연 고용보다 중요한 게 또 있을까.
경제정책의 최종목표는 고용이다. 정부도 기업도, 결국은 국민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제는 지속가능할 수 없으며, 이 점에서 한국경제는 지금 '불임(不妊)'상태나 다름없다.
정부도 고용위기의 심각성은 잘 안다. 하지만 거기까지. 접근방식은 구태의연 그 자체다. '○○사업으로 ○만개 일자리' '○조원 투입으로 ○만개 고용창출' 등 단순도출(고용유발계수)된 공허한 수치목표만 남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컬러(녹색)'가 자주 눈에 띈다는 정도? 전형적인 '자동판매기'식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돈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 마냥, 재정을 투입해서 사업만 벌이면 일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믿는 모양이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투자와 성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 만으론 불충분하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이상이지만, 고용률은 여전히 하위권에 쳐져 있다. 아무리 재정을 투입하고, 국책사업을 벌이고, 경기부양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린다 해도 지금 구조에선 일자리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고용 해법의 한 축이 성장(투자)이라면, 다른 축은 노동시장의 변화다. 일할 공간을 틀어막고 있는 고용ㆍ임금ㆍ근로시간 구조를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낮은 성장에도 높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역시 유연한 노동제도와 관행에 있다. 정부가 30만개, 아니 100만개를 만든다 해도 공허해 보이는 까닭은 노동시장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이란 어차피 일방통행은 불가한 것. 그렇기 때문에 더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늦춰서도 안되고 피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올해 사상 최악의 실업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2009년은 진정 '고용하는 해'의 원년이 될 것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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