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대의 딘 키스 사이먼턴 교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통합적 복합성(integrative complexity)'이 극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적 복합성이 낮은 사람은 하나의 사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통합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쉽게 말하면 외골수 고집쟁이가 되기 쉬운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통합적 복합성은 서로 관련이 있는 다양하고 우연적인 선택 가능성을 두루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통합시키는 사고 능력의 수준을 뜻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복합성은 분화와 통합, 두 가지로 구성된다. 분화는 당면한 문제를 숙고할 때 그것에 관한 다양한 측면들을 인지하는 것이다. 통합은 분화되어 있는 다양한 차원 혹은 관점들 사이의 인지적 상관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예컨대 이라크 전쟁만 해도 부시 대통령은 애당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단 하나의 사명감(?)에만 꽂혀 있어, 문제의 다양한 차원을 인지할 의사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정보기관들이 보고하는 다양한 정보사항 가운데도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선택하게 되어 있다. 평범한 개인이 그렇다면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겠지만, 대통령과 같은 리더가 그런 형편이라면 나라가 불행해지고 세상이 불행해질 수 있다.
통합적 복합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어디 미국의 부시 대통령뿐이겠는가. 통합의 정치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편협한 코드로 일관하거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소통하기보다는 한번 정한 목표를 밀어붙이기만 하는 불도저식 리더십도 통합적 복합성이 떨어지는 비근한 사례라 할 것이다. 좀 더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젊을 때는 열린 사고를 하던 이가 나이 들어가면서 모든 일을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밀어붙이는 이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저 분이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다.
개인이 그런 통합적 복합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폭 넓은 독서와 다양한 예술적 체험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소설 독서를 통해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은 물론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갖가지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사가 하나의 정답이 있는 단답식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절로 깨닫게 된다. 평소 나의 지론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나와 다른 입장에서도 취할 것이 있고 나름의 설득력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물의 본래 모습과는 크게 다른 추상적 이미지를 감상하거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다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역사책을 통해 접하거나, 다른 사람의 삶에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연극 한 편을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 개인의 통합적 복합성을 높이는 데 요긴하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맹자(孟子)는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을 정치 지도자의 으뜸가는 덕목이라 했건만, 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다가 함께 TV 방송에 출연해 노래 부르며 희희낙락하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통합적 복합성은 어느 수준일까?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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