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공룡 KT가 '이석채 호'의 새 돛을 올렸다.
남중수 전 사장이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두 달여간 경영 공백을 맞았던 KT는 14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이석채(64)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제11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사장은 이날 경기 분당의 KT 사옥에서 취임식을 갖고 "KT를 활력과 창의가 넘치는 성장 기업, 직원들을 다른 곳에서 모셔가고 싶은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변화를 위해 전사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전4기'의 사나이
이 사장의 인생 여정은 성공과 좌절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등 굴곡이 많았다. 경북 성주 출신인 그는 경복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행시 7회로 관가에 발을 디뎠다.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미 보스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타고난 경제 전문가였다. 과장 시절 뛰어난 기획력과 브리핑 능력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을 지내며 '장관급 과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1989년 대통령비서실 지역균형발전기획단,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부단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나며 첫 번째 시련을 맞았다. YS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그는 농림부와 초대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재경원 차관 시절에는 대북 특사까지 맡으며 장관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96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아 KTF, LG텔레콤, 한솔텔레콤(KTF에 합병) 등 개인휴대통신(PCS) 3사를 선정하며 국내 이동통신산업의 초석을 닦았다. 이어 97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옮겨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 '좌원종 우석채'로 통하며 타고난 경제관료의 능력을 발휘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한보 사태로 낙마한 그는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유리하도록 배점 방식을 변경한 혐의로 2001년 구속 기소되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결국 2006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절치부심 끝에 이번 KT 사장 취임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KT, 모진 변화 예상
'변화의 사나이' 이석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체신부에서 정통부로 이름이 바뀐 지 얼마 안됐을 때 장관을 맡았다. 경제 관료답게 당시 국장들이 정책안을 보고하면 "산업적, 경제적 효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체신부 관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장관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그때부터 정통부는 경제ㆍ산업적 효과를 고려해 정책을 입안하게 됐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정부 관료들은 "정통부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이 사장이 KT에 가져올 변화의 폭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KT의 혹독한 변화를 요구하는 그의 취임사에는 칼 끝처럼 날 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KT는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All New) KT가 되기 위해 당장의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수반될 것이다."
그는 "KT 직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질타했다. 비교 대상으로 특이하게 국내외 인터넷 기업인 NHN(네이버)과 위키피디아를 들었다.
그는 "주인의식을 갖는 네이버 직원들은 월급쟁이인 KT 직원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과 월급쟁이는 상대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매출 11조원의 KT를 1조원 규모의 NHN과 비교하며 KT 직원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는 또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처럼 직원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게시판에 올리면 누군가 수정 보완해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업무 방식을 IT화 하자"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관리, 통제 위주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관리직을 과감히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적재적소의 인사체계 구축을 위해 신상필벌의 원칙을 강화하고 협력기업을 소중한 고객으로 대우하는 풍토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취임사 말미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인용, "회사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먼저 생각하라"고 당부해 매서운 변화를 예고했다.
이 사장이 이처럼 변화를 강조한 것은 KTF 합병과 인터넷TV(IPTV),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 신(新)성장동력 육성이라는 생존을 위한 중대 과제들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동통신 1위업체인 SK텔레콤이 지난해 SK브로드밴드를 인수하며 유선통신마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어 시장 상황이 예전과는 판이하다. 그만큼 급변하는 통신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조직 변화가 시급하다는 게 이 사장의 판단이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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