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미네르바와 정부 관료의 행태를 풍자한 칼럼을 쓴 후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로서는 정부가 미네르바를 찾는 것은 그를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료로 기용하기 위해서라는 첫 문장부터가 황당하기 때문에 누구나 풍자 칼럼으로 읽을 줄 알았다. 풍자와 사실을 구분해서 일러주는 각주까지 붙였으니 더구나 모르랴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 이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민주당은 논평까지 냈다 취소했고 여러 인터넷 매체들이 이 글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기사를 썼다. 풍자가 풍자로 읽히지 않은 것은 읽은 이들의 독해력에도, 필자의 글솜씨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네르바의 전문성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쓴 나 역시 미네르바 기용설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리라 여겼던 것은 이명박 정부가 관료를 기용하는 원칙이 전문성이 아니라 '내식구' 여부라는 것을 누구나 알리라 여겼기 때문이었지, 그의 전문성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의 글 가운데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 부분과 청승스럽게 신세한탄을 하는 부분은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다르다는 점은 그때도 매우 기이했다.
언론은 놓친 미네르바 외환뉴스
정부 발표대로 전문대를 졸업한 실직자 박씨가 미네르바라면 한국에서 진정한 교육이 독서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매우 반갑고 그런데도 사회는 오로지 학벌로만 사람을 채용하니 이 같은 젊은이가 온라인에 대가 없이 글을 쓰는 것으로 열정을 소진하고 마침내는 구속까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물론 그의 글 가운데는 틀린 내용이나 과장된 부분도 많다. 그러나 경제연구소나 금융기관의 분석에도 틀리는 내용이 얼마나 많은가를 감안하면 그의 전문성을 낮추보기 힘들다. 설사 전문성은 낮추 볼 수 있더라도 그를 단죄할 이유는 절대 되지 않는다.
정부 주장대로 정부가 은행들에 달러 매수를 자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쓴 것이 외환시장을 교란시킨 죄가 된다면 발빠르게 사실을 보도하는 모든 언론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이 내용은 공문 형태만 아니었다 뿐이지 전화로 요청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만큼 미네르바는 어떤 언론보다도 놀라운 정보력을 보여주었다.
오랜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정부 정책을 받아쓰는 기사에 익숙한 언론은 발로 뛰어서 쓰는 이런 기사를 놓쳐버리는 데 아주 익숙해졌다. 그 결과 정부 역시 사실을 찾아내서 보도한다는 언론의 기능을 잊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그의 분석에 경제기관들이 반성해야 한다면 그의 발빠른 보도에 언론은 반성해야 마땅하다.
받아쓰는 언론시대 그리운가
단지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 외환시장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구속한다면 빈곤층과 실직문제를 지나치게 보도하면 한국 사회를 불안에 빠뜨린다고 구속할 수도 있고 군대 관련 기사를 쓰면 국가기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정부 비판을 심하게 하면 국론분열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구속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유신 때와 전두환 독재시절에 실제로 언론보도를 단속한 근거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노래한 가수나 퇴폐 예술도 제재를 받고 '건전한' 노래만 불려져야 한다. 동방신기의 '주문'을 퇴폐적으로 판정하는 데에서 이명박 정부는 이런 속성을 벌써부터 보여준다. 조만간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노래를 하는 이들이 정부 지원으로 대거 등장하고 마침내는 유신시절처럼 음반마다 건전가요를 수록하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일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꿈꾸는 세상은 언론이 정부가 주는대로 받아쓰는 세상일 것이다. 정부가 녹색 '삽질'로 경제를 살린다고 하면 여전히 큼직하게 받아 적어주는 언론이 이 착각을 유지시켜주는 모양이지만 세상은 변해도 많이 변했다. 여당 내에서도 미네르바 구속이 비판을 받는 것을 보면 그걸 모르는 것은 정부 뿐인 것 같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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