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F.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미국의 33대 대통령이 된 H. 트루먼은 2차대전 종전과 한국전쟁 발발 과정에서 우리와 좋고 나쁜 인연을 쌓았지만 개인적 일화도 적잖이 남겼다. 1948년 대선에서 '듀이, 트루먼 꺾고 당선'이라는 미국언론 사상 최악의 오보 사건을 낳으며 재선에 성공한 그는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경제학을 조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제학자들이 'On the one hand'라며 어떤 정책의 필요성과 효과를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꼭 'On the other hand'라는 토를 달아 빠져나가는 것을 빗댄 말이다.
▦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의 팻말에 새겨두고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The Buck Stops Here'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한다'고 풀이되는 이 말의 유래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포커게임에서 공정하게 딜러의 순번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한 'buckhorn knife'에서 나왔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손잡이가 사슴뿔로 된 칼을 다음 딜러에게 넘겨주는 것(passing the buck)이 곧 책임과 의무를 전가한다는 관용어로 굳어졌고, 이에 따라 숫사슴 혹은 1달러를 의미했던 buck에 책임이라는 뜻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 대통령직 승계 때 보잘 것 없는 출신배경으로 비웃음을 샀던 트루먼은 이 좌우명 덕분인지 원폭 투하, 한국전 참전, 베를린 공수 등 중대 결단을 내리며 점차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새해부터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 청와대 지하벙커의 '워룸'에서 주 1회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키로 하고 지난 주 첫 회의를 가졌다. 그 성격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트루먼 대통령의 'The buck stops here'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정에 관한 최종ㆍ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뜻이란다
▦ 기구가 어떻고 이름이 뭐든 대통령 중심제에서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귀속되고 당연히 무한책임도 따른다. 이런 맥락에서 그제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실망스럽다. 말은 길지만 요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속도전을 야당이 발목잡지 말고 협조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협조를 얻어내는 것까지 대통령의 몫이다. 지하벙커에서 요란 떠는 것이 'The buck stops here'의 참뜻이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부양책의 의회 통과를 위해 지금 워싱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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