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한 해 전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한 30배율의 천체망원경을 개발, 베네치아 의원들 앞에서 시연해 보였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실제 관측에 적용돼 달과 행성 등에 대해 중요한 결과를 내놓은 최초의 천체망원경이자, 근대 이전의 인식론과 우주론을 뒤엎는 토대가 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다양한 과학 분야에 크게 기여해 과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이다.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만든 것은 천문학 분야의 업적이다. 그의 천문학 발견은 인류의 지식 체계를 기초부터 흔들었고 당시 전통적 학문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만들었다.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망원경을 사용하여 천체를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단순히 망원경을 구입해 신기한 마음에 별을 관측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관측한 사실의 역사적 중요성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관측자로서 빈틈없는 재능도 있었다. 별이나 행성을 관측할 목적으로 열정적으로 망원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 천체망원경의 탄생
망원경 시대는 1608년 네덜란드에서 개막됐다. 그 해 9월 25일 네덜란드 지방정부의 관리가 헤이그에 있는 중앙정부의 총사령관에게 편지를 썼다. 안경 제작자인 한스 리퍼라이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사물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주도 채 안 돼 그 발명의 청구자가 두 명이나 더 나왔다. 결국 총사령관은 이 기구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너무 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발명 특허를 거절했다.
갈릴레오도 당시 유통되던 안경알을 조립하여 3배율의 망원경을 만들어 냈다. 그는 훌륭한 실험가였다. 숱한 시도와 실패를 통해 그는 배율이 어떻게 두 렌즈의 초점거리에 비례하는가를 알아냈다.
그는 굴절이 적게 되는 볼록렌즈와 굴절이 많이 되는 오목렌즈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렌즈를 안경 상인으로부터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당한 손재주가 필요한 렌즈 연마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
1609년 11월 20배율 망원경을 만들어 달을 관측함으로써 갈릴레오의 첫번째 천문학 연구 과제가 시작되었다. 11월30일부터 12월18일까지 그는 달의 위상 변화를 관측했다.
갈릴레오의 흥미를 돋군 것은 이 새로운 기구를 통해 본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이 때 자신의 기구가 천문학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바로 이 시점을 기념하기 위해 천체망원경 탄생 400년이 되는 2009년을 유엔은 '세계 천문의 해'로 지정했다.
■ '일곱 방랑자'의 배신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우주에 대한 사실들을 망원경으로 알게 된 갈릴레오는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하늘의 메신저'라는 뜻)라는 소책자에서 관측 결과를 보고하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갈릴레오는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시데레우스>
이 책에서 가장 긴 부분이 목성 근처에서 새롭게 발견된 네 개의 달(우리가 오늘날 '갈릴레오의 네 개의 위성'이라고 부르는)을 다루고 있다. 갈릴레오는 1610년 1월7일부터 3월2일까지의 관측결과를 바탕으로 직설적으로 사실에 근거를 둔 설명을 제시했다.
유사 이래 오직 '7개의 방랑자', 즉 해와 달, 5개의 행성만이 있었던 하늘에 갑자기 4개의 동료를 가진 행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 동행자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 근대 과학을 향한 출발점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여러 가지 이유로 논쟁거리였다. 첫째로 방법론적ㆍ인식론적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널리 퍼져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은 아무런 도구 없는 감각에 의한 정보로부터 얻어진 연역과 추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오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현상이 망원경이라는 기구의 도움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구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처음엔 상황이 달랐다. 기구가 갈릴레오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과 이 현상들이 하늘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망원경이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한 첫번째 과학적 기구라는 의미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둘째로 망원경은 수학의 역할을 문제 삼았다. 당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인정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수학과 자연을 하나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갈릴레오와는 차이가 있다. 그들은 수학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가능하지만 자연은 그 수학적 의미와 관계가 없다고 여겼다.
반면 갈릴레오는 수학은 자연의 언어이고,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열쇠라고 믿었다. 갈릴레오는 세심한 측정을 통해 수학적 개념이 자연을 이해하는 한가지 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
망원경은 또한 세계관에 대한 치열한 전투를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불규칙한 달의 표면은 철학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의하면 하늘은 완벽하고 불변이며 천체들은 완전히 부드러운 공 모양이어야 했다. 하지만 천상의 물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객관적 증거가 생긴 것이다. 과학자들은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가정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실제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자체도 '그가 믿는 것이 종교 교리와 배치되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실재하는 것으로 지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더욱 의미심장한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철학자들과의 싸움이었던 셈이다.
장헌영·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
● 망원경 어디까지 왔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육안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 400년이 되는 동안 망원경은 극한까지 나아갔다. 가능한 한 렌즈를 크게 해 멀리서 오는 미약한 별빛을 포착하고, 가능한 한 높은 곳으로 올라 별빛을 방해하는 대기와 도심의 불빛을 피해왔다.
그래서 선호되는 천문대의 입지는 대기가 안정적이고 인적이 드문 칠레와 하와이의 고지, 미국 애리조나주나 호주 내륙의 사막 등이다.
세계 최대의 광학망원경으로 꼽히는 것은 하와이의 해발 4,200m 높이 마우나케아산에 위치한 켁 망원경이다. 1.8m짜리 거울 36조각을 이어붙여 지름 10m의 렌즈를 구성하고, 이 렌즈 2개로 만든 쌍둥이 망원경이다.
하나의 거울로 만든 광학망원경 중에서는 애리조나주 그래엄산에 최근 준공된 거대쌍안망원경(LBT)을 세계 최대로 꼽을 수 있다.
8.4m짜리 렌즈 2개가 쌍안경처럼 나란히 붙은 망원경으로 이탈리아 미국과 독일이 참여해 건설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지름이 4.3m에 불과하지만 지구 대기의 방해가 전혀 없는 우주에 쏘아올려져 1990년 발사 이후 중요한 관측결과를 쏟아냈다.
빛만이 천문학자들의 관측 대상은 아니다. 천체는 별빛과 함께 전파도 방출하기 때문에 안테나로 전파를 수신하면 빛을 내지 않거나 빛으로 알 수 없는 천체까지 관측이 가능하다. 이것이 전파천문학이다.
전파망원경 역시 안테나의 크기가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능력을 좌우하는데 칠레에 있는 아레시보망원경(지름 305m)이 세계 최대다.
전파망원경은 여러 개의 망원경을 떨어뜨려 놓고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처럼 활용하면 떨어진 거리만큼 큰 망원경의 성능을 발휘한다. 즉 몇 대의 전파망원경을 1㎞쯤 떨어뜨려 네트워크화하면 1㎞ 크기의 전파망원경과 같은 것이다. 이를 전파간섭계라고 부른다.
세계 각국이 참여하는 초장기기선전파간섭계(VLBI)는 수천㎞에 해당하는 전파망원경 역할을 한다. 심지어 지구보다 더 큰 망원경도 가능하다.
지상의 전파망원경들과 인공위성으로 쏘아올린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VLBI우주천문대프로그램(VSOP)은 지구보다 더 큰 지름 2만1,400㎞짜리 전파망원경을 가능케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망원경은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이다. 서울, 울산, 제주를 잇는 500㎞급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도 최근 구축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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