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여야의 '법안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싸우다 지친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의 대회전을 겨냥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 주요 쟁점 법안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에는 아무런 변화의 징후가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뒤늦게 쟁점 법안의 내용과 취지를 국민에서 설명하고 알리는 데 바쁘고, 민주당은 '국회 폭력' 처리 문제를 본격적 법안 다툼의 전초전으로 보고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국민 뇌리에 찍힌 불 도장
양측이 서로 '국민의 뜻'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 달리 국민이 이 싸움에서 과연 어느 편인지는 불분명하다. 여론조사에 따라 다수의견의 찬반이 뒤바뀌는 데다 의원들도 소속 상임위의 소관 법안이 아니고는 제대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응답자들이 법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찬반을 택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쟁점 법안에 대한 국민의 혼란은 일차적으로 법안을 추진한 정부ㆍ여당이 조속한 입법의 필요성에만 사로잡혔지, 사전에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쟁점 법안의 일부 내용을 극적으로 과장해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 것도 이해의 공백을 키웠다. 이 가운데 설명ㆍ홍보 부족은 늦게나마 해소돼 가고 있지만, 야당이 법안에 찍은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스스로 성공을 자축한 '딱지 붙이기'가 대표적이다. 쟁점법안을 통틀어 'MB악법'으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그 가운데 6개 법안을 골라 인상적 별명을 따로 붙였다. 집회ㆍ시위 현장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마스크 처벌법',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언론 장악법',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네티즌 통제법'이라고 명명한 것 등이다.
이런 딱지 붙이기의 효과는 국회 점거농성 과정에서 관련 구호가 적힌 피켓이 자연스럽게 TV 화면을 타면서 더욱 커졌다. '은행까지 재벌 줄래' '방송마저 재벌 줄래' 등의 구호는 국민 뇌리에 불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같은 별명이라도 '마스크 처벌법'이 아닌 '복면 처벌법', '네티즌 통제법' 대신 '악플 통제법', '언론 장악법'이 아니라 '방송산업 규제 완화법'이라면 어땠을까. 국민의 인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법안의 내용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그 인상은 180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런 별명과 구호가 법안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았음을 의미한다.
야당의 선전전 승리가 씁쓸한 이유다. 즉흥성이 두드러진 인터넷과 TV 중심으로 언론환경이 바뀌고 있어 앞으로 실질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실질을 흐리는 이런 그릇된 이름 붙이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도 우울하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공자의 '정명론'의 핵심을 밝힌 <논어> 의 구절이다. 이름과 실질이 일치해야 올바른 이름(正名)이듯,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이름(지위)에 걸맞을 실질(의무)을 다해야 사회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이름이 흐트러지거나 사회 구성원이 각각의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논어>
실질과 이름을 일치시켜야
실질과 일치하는 이름이 '정명'이라면 실질을 흐트러뜨리는 이름은 '혼명(混名)'이라 할 수 있다. <논어> 에서 공자는 정명론에 이어 곧바로 '정치란 바로잡는 것(政者正也)'이라고 했다. 그런데 흐트러진 세상을 바로잡고, 잘못된 이름을 바로잡아야 할 정치가 도리어 혼란을 부추기고, 그 결과를 자축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또한 네거티브 공세와 마찬가지로 적은 비용으로 커다란 정치적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에 대한 유혹이 끊이기도 어렵다. 논어>
이런 혼명의 정치를 끝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최종적 피해자인 국민이다.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내용을 차분히 살필 수 있어야 국민다운 국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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