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10시 경남 통영시 통영항. 그물과 쇠말뚝, 망치 등을 든 장정 20여명이 한려해상국립공원 소속 순찰선 '국립공원 101호'(20톤급)에 올랐다. 일대 섬 생태계를 위협하는 염소떼 소탕 작전에 나선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 동부사무소 직원들이다. 올해 첫 출정지는 뱃길로 1시간 거리인 산양읍 저림리 만지도(晩地島), 15가구 32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바닷바람을 가르고 만지도에 도착한 직원들은 400m 길이의 그물과 쇠말뚝 50여개, 염소 모는데 쓰는 대나무 작대기, 망치, 괭이 등을 주섬주섬 챙겨 등짐을 꾸렸다. 섬 지형이 워낙 험해 차량 운반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40여분을 걸어 마을 뒷산에 오른 직원들은 얼른 등짐을 풀고 내려다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따라 2m 높이로 그물을 쳤다. 30여마리로 추정되는 염소의 예상 이동로를 따라 포획망을 구축하는 것. 그물에 갇힌 염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쇠말뚝을 촘촘히 박고는, 그물 안에 배춧잎과 사료 등 염소를 유인하기 위한 먹잇감을 군데군데 뿌려놓았다.
한나절이 걸린 포획망 구축을 끝낸 직원들은 다음날 있을 '염소 소탕 작전'의 성공을 기원하며 뭍으로 발길을 돌렸다.
8일 오전 9시, 동부사무소 직원 중 절반이 넘는 30여명이 작전에 동원돼 순찰선을 타고 만지도로 향했다. 멀찌감치에서부터 숨을 죽인 채 전날 설치해놓은 그물 안을 살피며 한 발 한 발 다가서던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작전에 참가한 직원 김성태(32)씨가 발을 헛디뎌 3m 벼랑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머리를 크게 다친 김씨는 해경 경비정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2일 오후 끝내 숨졌다. 이 사고 후 염소 소탕 작전은 잠정 중단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염소떼와의 전쟁'에 나선 것은 2007년 12월. 섬 주민들이 키우다 버린 염소가 야생화하고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섬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해 3월 공단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20여개 섬에 주인 없이 버려진 염소가 300여마리에 달했다.
고기 잡아 먹고 살던 섬 주민들은 7, 8년 전부터 염소를 들여와 키웠다. 한 3, 4년은 염소 팔아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으나, 수요가 급격히 줄자 고령의 주민들은 힘에 부치는 염소몰이에서 하나 둘 손을 뗐다. 만지도 이장 박성윤(68)씨는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70세 이상인데다 삯을 주고 일꾼을 사는 것도 타산이 맞지 않아 3년째 염소몰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려진 염소들은 야생에 적응하며 왕성한 번식력으로 섬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염소는 생후 8개월부터 새끼를 배기 시작해 1년에 두 번, 한 번에 1~2마리씩 출산이 가능하다. 고립된 섬에는 천적도 없다.
게다가 염소는 먹성도 대단하다. 봄철에는 새순이나 새싹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겨울철에는 식물 뿌리와 나무껍질까지 갉아먹는다. 독성이 유난히 강한 염소 배설물에 의한 식물 고사, 이에 따른 섬 사막화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공단은 지난해 말까지 통영 대매물도 등 6개 섬에서 8차례 소탕 작전을 벌여 염소 77마리를 포획했다. 잡힌 염소는 주인이 확인된 경우 주인에게 넘겨 육지로 반출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공매를 통해 팔아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쓰고 있다.
'8차례 작전에 77마리 포획'이란 실적이 말해주듯이, 야생에 적응한 염소를 소탕하기란 쉽지 않다.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에만 포획이 가능한데다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서 염소와 아찔한 숨바꼭질을 벌여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더욱이 소탕 작전을 벌이다 동료를 잃은 동부사무소 직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동부사무소 김중섭(51) 자원보전팀장은 "귀중한 생명을 잃어 안타깝지만 국립공원 내 멸종위기 희귀식물 등 섬 생태계 보호를 위해 염소를 반드시 소탕해야 한다"면서 "안전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소탕 작업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통영=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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