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아소타로(麻生太郞)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두 나라 관계의 복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를 지닌 한일 양국의 '가깝고도 가까운 관계'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두 정상은 5차례 만났고 양자 회담만 3번째로, 두 나라 정치 지도자간의 상호 신뢰가 구축되고 있다고 하겠다.
경제위기에 해묵은 갈등 봉합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아소 총리는 한ㆍ일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 금융과 경제분야에서의 실질 협력, 북핵과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한ㆍ미ㆍ일 3국 공조,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 등을 폭 넓게 논의했다. 이 가운데 양국의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부품소재산업 전용공단 일본기업 유치, 일본 투자구매단의 한국 방문, 중소기업 CEO 포럼 개최, 이공계 유학생 파견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두드러진 실용적 성과이다.
두 정상은 또 한ㆍ일 FTA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 양국 정치인를 비롯한 인적교류 확대, 한ㆍ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추진, 아프간 공동지원 등에도 합의하였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6자 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한ㆍ미ㆍ일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처럼 양국 정상이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 해묵은 갈등요인을 제쳐둔 채 신뢰와 협력 관계를 다짐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미국의 동아시아정책 변화 가능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 오바마 정권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북ㆍ미 직접대화를 모색하는 것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대처뿐 아니라 북한 핵과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3국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금융위기와 누적 무역적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 재계의 협력이 필요한 처지이다.
그러나 국내외적 위기 상황은 두 나라의 오랜 갈등을 잠시 봉합하거나 수면 아래에 둘 뿐,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년 '한ㆍ일 병합' 100년을 앞두고 갈등 요인이 다시 불거질 개연성이 잠재하고 있다. 당장 일본 정부가 3월말까지 해양조사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조사대상 지역에 독도를 포함시킬 경우, 영유권 분쟁이 재연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시각에서 협력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양국 관계 발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한ㆍ일 병합'100년인 2010년은 힘들지만 극복해야 할 1년이다. 두 나라 청소년과 지자체의 교류 확대, 문화 관광교류 활성화, 한ㆍ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추진 등을 통해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양국 관계의 안전판을 축적해가야 한다.
둘째, 한ㆍ일 협력을 바탕으로 동북아 협력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한ㆍ중ㆍ일 3국은 동아시아 금융안정을 위한 공동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80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 판 국제통화기금을 검토하거나, 북한의 핵 검증 거부에 3국이 일치해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성과였다.
지난해 12월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은 아세안+3가 아닌 동북아 3개국 정상이 참석한 뜻 깊은 회담이었다. 금융위기 극복과 동북아평화를 위해 한국이 한ㆍ중ㆍ일 3각 협력을 주도해간다면 한ㆍ일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ㆍ일 소프트파워 함께 활용
셋째, 한ㆍ일 양국이 공동으로 글로벌전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글로벌코리아를 지향하고 있으며, 일본도 국제공헌을 모색하고 있다. 두 나라가 소프트파워를 합친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예컨대, 이 대통령과 아소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 합의한 아프가니스탄 부흥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양국이 모두 외교력을 강화하는 윈ㆍ윈 게임이 될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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