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모두 잃는 절망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세계 최초의 대기록을 세운 산악인 김홍빈(44)씨가 13일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다. 2일 오전 1시50분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7m) 정상에 오른 지 11일 만이다. 그는 "참고 또 참았던 게 힘이 돼 남극 최고점에 오를 수 있었다"며 그 날의 감동을 짧게 전했다.
김씨는 1991년 북미 알래스카 매킨리(6,194m)를 오르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혼자 등반하다가 탈진해 의식을 잃은 뒤 16시간 만에 구조됐지만 동상에 걸린 양쪽 손은 손등까지 뭉그러졌다. 혼자서는 신발끈은커녕 옷도 입지 못하게 된 그는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수년간 무등산과 지리산, 월출산 등을 찾아 손가락 없이 산에 오르는 방법을 터득했고, 97년부터는 7대륙 최고봉 등정 도전에 나섰다.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 정상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남미 아콩카과(6,959m),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 북미 매킨리, 호주 코지어스코(2,228m) 등 6개 대륙의 최고봉을 차례로 올랐다.
그리고 2년 뒤인 지난해 12월11일 그는 마지막 남은 남극의 빈슨 매시프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기온이 영하 40~50도에 이른데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폭풍설을 뚫고 오르는 빈슨 매시프 공략은 쉽지 않았다. "지병인 폐부종에다가 고소 적응도 어려워 등반속도가 떨어졌지만 고국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에 걷기를 멈출 수 없었죠."
그는 손가락이 없는 한계를 그만의 '맞춤기술'로 극복하며 암벽을 올랐다. 버스 안에서 발로만 중심을 잡는 훈련을 통해 균형감각을 키운 덕분이었다. 절벽에서도 벽에 몸을 붙이지 않고 몸을 세워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속도를 냈다.
7대륙 최고봉에 자취를 남긴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생각하고 있다. 8,000m급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아직 오르지 못한 10개 봉우리를 앞으로 5년 안에 모두 오르겠다는 포부다.
김씨는 "누구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하는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치명적인 장애가 있어도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등반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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