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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고교야구 최고 투수 남우식씨 롯데우유 CEO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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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고교야구 최고 투수 남우식씨 롯데우유 CEO로

입력
2009.01.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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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였던 왕년의 스포츠 스타가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성공시대를 열었다. 1970년대 초 고교야구 경북고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초특급 투수 남우식(57)씨는 7일 푸르밀(구 롯데우유) 사내 인사를 통해 경영지원실 상무에서 대표이사 전무로 승진, 임명됐다. 야구선수 출신인 남 대표가 롯데우유 입사 28년 만에 CEO 자리에 오른 것이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김응룡 사장이 `동종업계'에서 고위직에 오른 것과 달리 남 대표는 스포츠와 무관한 분야에서 그야말로 전문경영인으로서 CEO가 됐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남 대표는 고교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투수였다. 당시 서영무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경북고에서 남우식은 제4회 대통령배 우수투수상ㆍ타격상, 제22회 화랑기 최우수선수상(이상 1970년) 제5회 대통령배 우수선수상, 제26회 청룡기 우수선수상, 제1회 봉황대기 최우수선수상, 제25회 황금사자기 우수선수상(이상 1971년)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던 최고의 스타였다.

남 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통화에서 "1971년 3학년 때 4대 전국 대회인 대통령기,청룡기,봉황기,황금사자기를 석권했다"라며 "특히 제1회였던 봉황대기에서는 7경기를 모두 완투하며 우승, `철완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남 대표는 일본에서 열린 첫 한ㆍ일고교 교환경기에 참가해 6전 전승을 이끌며 일본 야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북고 졸업 뒤 한양대를 거쳐 아마팀 롯데에서 1980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남 대표는 진로를 고민하다가 전혀 다른 길인 롯데햄우유 영업부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프로야구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 대표는 "그 때 어려움은 책 두 권을 써도 모자라겠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미래를 불안해 하는 야구인 후배들이 적지 않은데 자신감만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좋은 예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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