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맞닿아 하얗게 펼쳐진 시린 설원 위로 멀리 눈보라가 일어난다. 순간 촘촘히 박힌 기문 사이를 날렵하게 통과한 스키어의 거친 숨소리가 카메라 렌즈를 넘어 귓속까지 전해진다.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 리조트의 슬로프, 이곳에서 훈련에 열중인 한 실업스키팀 선수들을 만났다.
"스키부츠를 신는 대신 모노스키를 탈 뿐 모든 것이 같습니다."
눈밭을 가르는 선수들의 모습은 일반 스키선수들과 같지만 이들은 단 하나의 스키 플레이트만을 사용하는 장애인 스키팀 알파인 선수들이다.
하지만 선입견은 금물. 스키팀의 훈련과 생활을 담당하는 김보성 코치의 말처럼 스키부츠를 신고 두 개의 플레이트에 오르는 비장애인과 달리 몸을 고정시키는 모노스키를 타고 하나의 플레이트에 오를 뿐 나머지는 모든 것이 같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2일 국내 첫 동계스포츠 장애인 실업팀으로 창단된 하이원 장애인 스키팀이다. 스키팀은 김대영 총감독과 알파인의 이기현, 김보성 코치, 이환경(36), 한상민(30), 박종석(42) 선수, 그리고 크로스컨트리의 박기호 코치와 임학수(21) 선수로 구성되었다.
현재 알파인팀은 하이원 스키장에서, 크로스컨트리는 용평 바이애슬론 경기장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겠나?' 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어 큰 힘이 됩니다." 한상민 선수가 실업팀에 들어온 소감을 표현한 말이다. 대부분 기량이 완숙해 지는 나이가 되면 경제적 여건에 부딪혀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것이 지금까지 국내 장애인 스포츠의 현실이었다.
특히 동계스포츠의 환경은 타 종목보다 더욱 열악했다. 한선수가 첫 국가대표에 발탁된 1995년 국내 모노스키는 장애인복지진흥회의 레저용 단 1대뿐이었다. 대당 800만원 정도 하는 고가의 비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후 2대로 늘어났다가 작년에야 겨우 레이스용 개인 장비를 갖추게 됐다.
"전 세계 선수들이 모두 놀랐죠. 일본인이 6년 정도 타고 한국에 팔았던 중고장비를 00/01시즌에 다시 구매를 해 그 장비를 가지고 2002년도 대회에 나갔으니까요." 한선수의 2002년 솔트레이크 장애인동계올림픽 참가 기억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8년이 넘은 이 레저용 장비로 은메달을 따 다시 한 번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제 안정적으로 훈련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된 스키팀 선수들은 올 시즌 3차례 월드컵대회 참가를 통해 내년 밴쿠버 장애인동계올림픽의 자력 진출 포인트 획득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알파인 팀은 다음달 19일 하이원 리조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순위에 입상하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목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이 나오면 더 많은 기업들의 관심과 정부 지원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종목은 달라도 더 많은 장애인 실업팀이 생기고 장애인 후배들이 당당하게 일자리를 갖고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겁니다." 이환경 선수의 말처럼 선수들은 좋은 성적이 자신들의 앞날을 넘어 다른 장애인 선수들의 앞날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오늘도 시린 설원을 뜨거운 목표를 가지고 질주하는 장애인 스키팀 선수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글·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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