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닙니다. 겨울방학이라 이 달 27일까지는 집에 있을 예정이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말썽쟁이 아들이랑 어떻게 긴긴 방학을 무사히 날지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옵니다. 큰 아들은 여섯 살, 둘째는 생후 2개월이 조금 넘었습니다. 터울이 많아서 동생을 잘 돌보고 예뻐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닥치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니네요. 제가 둘째 기저귀 갈아주면서 눈맞추고 옹알이에 답만 해줘도 이런답니다. "엄마, 나만 예뻐한다더니…. 동생은 내가 예뻐할 테니까 엄마는 나만 좋아해"
말을 어찌나 안 듣는지 밥먹자고 하면 텔레비전 켜고, 같이 밖에 나가자고 보채서 기껏 둘째 기저귀 가방 챙기고 업고 준비하면 갑자기 집에 있겠다고 합니다. 책 좀 읽자고 하면 장난감만 가지고 놉니다. 번번히 머리를 쥐어박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다섯 살 때만 해도 말을 곧잘 듣더니만 지금은 청개구리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니까요.
어제 일만 해도 그래요. 둘째에게 젖을 빨리고 나서 잠시 눈을 붙였나 봅니다. "빨리 내! 아이 씨, 빨리 좀 내라고~." 깨어보니 누워있는 동생한테 캐릭터카드를 나눠주고는 그림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제가 한 장 냈으니 아기한테 카드를 한 장 내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기가 차서 "야, 너 지금 뭣하니? 어린 동생이 뭘 알아서 카드 게임을 해. 내가 정말 못살아." "아, 빨리 내라고 하니까 안 내잖아." "으이그~ 그리고도 네가 형이야?. 왜 곱게 자는 애를 깨워서 그래." "알았다고 그만 해." "뭘 알아." "알았다니까 그러시네." "뭐? 그러시네. 그런 말은 또 어서 배웠다니?" "테레비에서 배웠징."
아들과 씨름하다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데 방에서 작은 애가 또 숨넘어가게 울어대는 것 아니겠어요. "뭐야? 또 무슨 일이야." "엄마 민이랑 시장놀이 하는데 울어." 유모차에 눕혀놓은 아이 배 위에 장난감이 여러 개 있지 뭡니까? "민이가 장난감 산다고 해서 내가 준건데." "아, 애가 어떻게 산다고 말을 했겠어? 애기 배 위에 장난감을 이렇게 올려놓으면 어떡해. 동생이 장난감이야?"
소스라치게 놀라 우는 애를 달래고 있는데 마침 제 아빠가 회사에서 잠깐 집에 들렀더라고요. 애 아빠는 저보다 엄격한 편이어서 잘못하면 바로 체벌을 합니다. 분명 맞게 되는 상황인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너무 아픈 거 있죠. "너 아빠한테 맞을 것 같다. 엄마는 몰라." "아, 싫어. 맞는 거 싫다고." 그러자 우리 남편 "무슨 일이야?" "애가 민이 배위에 장난감을 올려놨잖아. 그래서 놀랐는지 좀 울었어." " 뭐? 너 일루 나와."
한참 만에야 제 방에서 나오는 아들 녀석이 엉덩이를 석 대를 맞았지요. 다른 때 같으면 울고 불고 생난리를 쳤을 텐데 의연하게 매를 맞더라고요. '녀석이 좀 컸나? 잘못한 줄은 아나 보네." 저는 엉덩이에 연고라도 발라줄까 싶어 측은한 맘에 자고있는 아이 방으로 갔습니다. "으이그~ 말 좀 잘 들으면 안 맞을 것을. 왜 이리 말을 안 듣니?"하고는 팬티를 벗겼지요. "아니 이게 뭐야? 이 녀석이 팬티를 두 장 입었나?"
이게 웬일이랍니까. "뭐야. 속에 또 팬티가 있네." 세상에나, 녀석은 팬티를 넉장이나 입었더라고요. 엉덩이는 말짱하구요. 어쩐지 방에서 늦게 나오더니만. "야! 일어나봐.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팬티를 네 개나 입었어?" "때리면 아파서 그랬지." 버릇 나빠질까봐 웃지도 못하고…,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 뭡니까? 쬐끄만게 잔머리를 이렇게 써도 되는 겁니까?
"동생 때문에 엄마 나가기 힘드니까 집 앞에 쓰레기 봉투 좀 버리고 와." "알았다고" "알았다고가 뭐야. 니가 사춘기 중학생이야. 말 좀 예쁘게 해. '네 엄마' 하면 되잖아." "알았다니까 그러시네." 으이그 말을 말자 말아. 아무튼 쓰레기를 버리고 온 아들은 곱게 제 방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데요. 흐흐… 역시 맞고 나니 말을 잘 듣는 구만.
말도 잘 듣고 풀 죽은 모습이 좀 안쓰럽길래 좋아하는 마트라도 데려가려고 신랑한테 "자기야! 저녁에 마트에 다녀올까? 기저귀도 떨어지고, 과일도 좀 사야 하는데." 외출준비를 하고 내려갔는데 어머나,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우리 남편, "뭐야? 어떤 놈이 내 차 위에다 쓰레기를 올려놨어?" "어머, 누가 정말 우리 차 위에 이런걸 버렸지?" 몹시 기분이 나빠 가까이 다가갔다가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쓰레기 봉지는 우리집 것이 자명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불러내 작은 소리로 "야! 어떻게 된 거야. 아빠 차가 쓰레기 통이냐? 왜 여기에 버렸어?" "아빠가 때리니까 화가 나서 그랬지." "뭐?"
저는 쓰레기를 얼른 내려놓으며 아들의 소심한 복수를 남편이 눈치라도 챌까 봐 "자기야 참아. 누군지 알아서 뭐 할 꺼야. 애들이랑 내가 집에만 있는데 누군지 밝혀서 해코지 하면 어떡해." 남편은 제 말에 동의를 하고는 "하기사 이런 곳에 쓰레기를 올려놓을 만큼 사람도 아닌 놈하고 상대하면 뭣하냐. 나만 손해지." 저는 아들에게 또 한 번 이런 짓을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얼른 차에 올라탔습니다. 녀석은 속도 없이 좋아라 하면서 "엄마, 장난감 하나 사주면 안돼? 파워레인저 와일드 스피릿 하나만 사줘. 엉? 새로 변신하는 장난감 나왔단 말야." 제가 이 상황에 장난감 사주게 생겼습니까?
으이그~ 점점 머리 커가는 아들 키우기 힘들어 죽겠습니다. 좀 더 크면 잘 들을라나요?. 아들아, 제발 한 살 더 먹어 일곱 살 되었으니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경기 안양 임승희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