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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사법연수원 38기 여러분

입력
2009.01.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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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이 수료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법시험을 목표로 법전과 씨름 한 지 몇 해 만입니까. 사시 준비도 그렇지만 사법연수원 생활은 더 어려웠을 겁니다. 연수원 성적이 법조인으로서의 미래를 결정짓는 게 현실이니까요. 신고(辛苦)의 시간을 거친 만큼 축하와 격려는 당연합니다.

존경 받는 법조인의 삶

그러나 올해 수료식 분위기는 영 아닐 것 같습니다. 전체 수료생 979명 중 절반이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니까요. 사시 1,000명 시대의 첫 세대인 33기 가운데 22%가 수료 당시 '진로 미정'이었던 것에 비해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저주 받은 기수'라는 말까지 들리더군요. 변호사 업계가 무한경쟁에 돌입한 마당에, 최악의 불황에다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까지 겹쳤으니 오죽하겠습니까. 판ㆍ검사로 임용되거나 로펌, 대기업 등에 취업한 분들은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막막할 겁니다.

물론 과거 예를 보면 수료 후 두 세달 정도 지나면 실업 상태는 면하더군요. 변호사 자격을 썩힐 순 없으니 개업을 하지요. 하지만 직원 월급, 사무실 유지비가 나올 지 걱정이 앞설 겁니다. 더구나 3년 뒤부터는 매년 2,000~2,500명의 법조인이 쏟아져 나올 판이니, 속이 탈 수 밖에요.

여러분의 수료 소식을 듣고 저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떠올렸습니다. 마침 한달 전인 지난해 12월 12일은 조 변호사의 18주기였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수석 합격,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의 실력이라면 그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길을 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아마 지금쯤 법원의 높은 자리에 있거나 대형 로펌의 거물 변호사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핍박 받는 이, 가난한 이,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43년 짧은 생에서 변호사로는 불과 8년 밖에 활동하지 못했지만 그는 영원히 존경 받을 몇 안 되는 법조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법률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최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조사 결과, 인구 5만5,000명 이상 시ㆍ군ㆍ구 178곳 가운데 변호사가 1명 이하인 '무변촌'이 무려 73곳(41%)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이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대도시로만 몰리는 탓이지요. 그렇다고 대다수 도시민들이 양질의 저렴한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이런 법률서비스 사각지대가 생긴 원인을 법조인 특유의 보상 심리와 이른바 직역 이기주의에서 찾고 싶습니다. 힘들게 공부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만큼 상응한 대가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 법률지식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무한정 확장 시키려는 집념 말입니다. 많이 내렸다지만 사건 수임료가 여전히 국민 눈높이보다 한참 위에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고도의 법률지식을 갖췄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여러분의 시선을 로펌 대기업 공공기관에 고정시켰을 겁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여러분이 낭패감을 느낀다면 한번쯤 자신을 여전히 우월적 존재로 여기진 않는 지 돌아봐 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또 어떻습니까. 변호사가 늘어나 수입이 좀 줄었다고 변리사 세무사 공인중개사의 일까지 빼앗으려는 행태는 코미디 같습니다. 법률시장에 '법률사업가'만 판친다는 비아냥이 들리지 않나요.

눈 높이를 아래에 맞추길

더 낮추십시오. 시선을 더 아래에 두십시오. 억대 연봉과 고급 승용차 뒷좌석의 안락함을 더는 기대하지 마십시오. 대졸 신입사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한들, 그게 그리 대수입니까. 지방의 무변촌, 대도시의 법률서비스 불모지대로 눈을 돌리십시오. 그 곳에 기회가 있습니다. 여전히 핍박 받는 이, 가난한 이, 소외된 이들은 많습니다. 조영래 변호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뒹구십시오. 그 것이 법 정의를 실현하는 작은 출발이 아니겠습니까. 위만 쳐다보면 초조함과 초라함은 더 깊어질 겁니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결 편할 것입니다.

연수원 수료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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