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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소설집 '첫눈' 낸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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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소설집 '첫눈' 낸 이순원

입력
2009.01.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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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받을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어서일까요. 따뜻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읽고 나면 정겹고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틋해지는 그런 소설을요."

이순원(52)씨가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2003)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소설집 <첫눈> (뿔 발행)에 수록된 7편의 단편은 점차 각박해져가는 현실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작품들이다.

"5년 전에 발표됐다 해도 혹은 10년 뒤에 발표된다고 해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기대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고 느낄 만하다.

비록 소재는 제각각일지언정 20년 넘게 그의 소설세계를 관통해온 불변의 가치인 '인간적 삶에 대한 희구'가 작품들의 배면에 굳건히 또아리 틀고 있기 때문이다.

약탈혼, 매매혼으로 전락한 우리 농촌의 동남아여성들과의 결혼 풍속도를 소재로 한 '미안해요, 호 아저씨'의 메시지는 직접적이다. 초등학교 동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갔던 화자는 그곳에 걸린 '월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초혼, 재혼, 장애자, 연세 많으신 분,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화자는 "이것은 그걸 내건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 땅의 누구하나 예외 없이 한 가치 아래 형성해온 집단적 비열함에 다름이 아니었다"고 탄식하고, 낯선 한국으로 팔려올 어느 베트남 여성의 깊은 슬픔에 공명한다. 화자의 목소리는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극악스러워졌는가"라는 작가의 반성적 질문에 다름아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인간적 삶에 대한 그리움을, 작가가 즐겨 그려왔던 공동체적 삶의 풍속에 접합시켜 풀어낸 단편이다. 어린아이를 병으로 잃는 일이 잦아 생모 이외에도 그 아이의 명(命)을 지켜줄 '명 어머니'를 두었던 옛 고향의 풍습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했다.

객지를 여행하던 주인공이 명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을 위해 급작스레 강릉으로 귀향하는 과정에서 느낀 '운명'의 존재감, 비록 핏줄로 연결돼 있지 않더라도 그 관계란 혈연적 사랑 그 이상일 수 있음을 자각해가는 과정이 순정하게 묘사돼 있다.

이와 반대로 '거미의 집'은 자녀들에게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어머니가 소재다. 점점 현실화돼가는 우리시대의 기로(棄老) 현상을 핍진하게 그렸다.

"자신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줄은 알지만 어머니와 같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어머니는 같이 살면 자식에게 누를 끼치지만 이 다음 자신은 신식이어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머니 모시기를 거부하는 아내를 둔 한 집안의 큰아들이 주인공이다.

서로서로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어머니 부양을 거절하는 형제자매들 앞에서 그가 느끼는 막막함은, 인간적 가치의 보루여야 할 가족관계마저 황폐해지고 형해화하는 우리 현실을 상징한다.

이밖에도 이루지 못한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애잔하게 그려낸 표제작, 2002년 대선 당시의 촛불시위를 소재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른 두 집단 사이에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반문하는 '카프카의 여인' 등 폭넓은 작가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갓 쓰고 도포 입고 제사 모시는 어른들이 있다. 서울로 올라올 때면 마치 300년 전의 시대로부터 통과해온 기분이 든다"는 이씨의 세계관을 복고적이고 회고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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