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롯데는 불황에 강했다. 그룹의 14년 숙원사업이던 제2롯데월드 신축을 사실상 인정 받으면서 기축년 새해의 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앞서 주류 공룡의 탄생을 예고하는 ㈜두산의 주류부문 인수작업도 6일 완료됐다. 국내 대기업들이 실물경제 침체에 허덕이고 있지만, 롯데 만은 거침없이 비상하는 모습이다. 어디까지 솟아오를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막강한 유동성을 내세운 현금재벌의 위용에 지금 재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15년 숙원 풀었다", 활기 넘치는 롯데
8일 롯데그룹에는 활기가 넘쳤다. 정부가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의 신축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장병수 그룹홍보실 전무는 "사업계획을 발표한지 15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면서 "서울시의 건축심의가 남아있지만 빠르면 6월, 늦어도 10월 초까지는 기공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2롯데월드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여생의 꿈'이라고까지 표현한 그룹의 숙원사업. 신 회장은 평소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 일환으로 전 세계가 놀랄만한 초고층 건물을 짓고자 했던 것. 잠실의 노른자위 땅 2만6000여 평에 112층 규모의 건물을 올릴 계획으로, 현재 미국 솜(SOM)사에서 건축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는 "세계 어느 초고층 건물도 견줄 수 없는, 건물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환상적인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건축비만 1조7,000억~2조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롯데는 자금 마련에 전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장 전무는 "롯데는 유통, 식음료, 호텔관광업 등 그룹의 핵심역량 자체가 현금 확보에 유리하고 금융권의 신뢰도 높다"면서 "미국 일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할 계획이어서 건축비 조달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했다.
다시 주목 받는 신격호의 힘
롯데의 승승장구가 이어지면서 새삼 주목 받는 것이 신격호 회장의 리더십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올해 88세를 맞은 유일한 창업 1세대 '현역'인 신 회장의 선견지명에 놀라워 하고 있다. 신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인 지난해 봄, 이미 그룹 계열사들에 현금 확보를 명했다. 배경을 묻는 언론에 내놓은 답은 "하반기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가 전부였다. 일본과 유럽에서 전환사채를 발행해 확보한 자금이 지난해 말 기준 9,000억원이 넘었다.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부터 롯데의 '사냥'이 시작됐다. 8월 네덜란드계 초콜릿회사 길리안, 10월 인도네시아 마크로 19개 점포, 12월 코스모투자자문 지분 21% 등을 순차적으로 사들였다. 올 들어 두산 주류부문을 인수했고 OB맥주, 대신증권 등의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계속 흘러나온다.
롯데의 다른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돈 걱정 안 한 유일한 기업이 롯데"라고 말한다. 그 핵심엔 '거화취실(去華就實ㆍ겉으로 포장하거나 치장하기보다는 실속을 취한다)'이라는 신 회장의 좌우명이 있다. 1일 고향인 울산 울주군 둔기리에서 설을 세고 이른바 '셔틀경영'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신 회장은 이번 제2롯데월드 신축 허용 방침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회장님은 기업이든 사람이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경박하다고 생각한다. 실속 없는 짓이라는 거다"라고 말했다.
재계 5대그룹 체제로 갈 가능성
롯데는 현재 자산규모 기준(공사 제외) 재계 서열 5위(43조원)에 올라있다. 4위는 LG그룹(57조). 롯데의 승승장구가 당장 양대 그룹의 순위에 변동을 가져오긴 어렵지만, 격차는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룹 외적인 환경도 좋다. 사실 제2롯데월드 신축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롯데 측과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았던 사항이다. 롯데의 숙원이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해 고용효과를 얻으려는 MB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한 셈이다.
장 전무는 "제2롯데월드가 완성되는 5년 뒤에는 유통-식음료-호텔관광업으로 이어지는 그룹 핵심역량 간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하고 신동빈 부회장이 적극 밀고있는 금융업도 탄력을 받아 그룹 외형이 적잖이 확대될 것"이라며 "4대그룹 체제에서 5대그룹 체제로 갈 것은 확실하고 더 좋은 결과도 나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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