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을 높여 올해 본격화될 기업구조조정에 대비하게 하겠다는 '은행권 자본확충펀드'가 출범 전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디어를 낸 금융위원회와, 지원을 받아야 할 은행, 자금을 댈 한국은행 등 '한 배를 탈 선원들'이 모두 서로 다른 고민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 시중은행을 지원대상으로 한 자본확충펀드에는 일단 우리은행과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소속 은행들만 지원을 신청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민과 신한, 하나 등 정부지분이 없는 대형 은행들은 이미 자체 자본확충을 통해 감독당국의 국제결제은행(BIS) 기본자본비율 권고치인 9%를 달성해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산ㆍ대구ㆍ전북ㆍ제주 등 지방 은행들도 대체로 자력으로 자본을 확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20조원 범위에서 운용될 자본확충펀드는 우선 수조원으로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민간' 은행들이 자금수혈을 꺼리는 것은 정부 간섭에 대한 우려 때문. 이미 지난해 정부의 해외차입 지급보증을 받으면서 경영효율화 등이 포함된 양해각서(MOU)를 '울며 겨자먹기'로 체결한 바 있는 은행들이 가능한 한 추가간섭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 BIS비율 9%를 못 채운 은행도 최대한 자체 해결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융위는 '선의'를 강조하고 있다. 지원을 받으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고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것인만큼 과도한 의무를 지울 계획도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처럼 망해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하는 자금이 아니니 지원에 따른 의무조건도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며 "지금은 일부 은행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은 다 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펀드 자금의 절반을 대기로 예정된 한은은 명분이 고민이다. 한은법상 영리기업인 자본확충펀드는 평시 지원대상이 아니어서 이번에 돈을 대려면 금융통화위원들이 '지금이 심각한 통화신용의 위축기(금융사가 기존 대출을 회수하며 신규대출을 억제하는 상황)'라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론, 한은 내부에서조차 상황 판단과 부작용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혼선의 최대 원인은 최근 다소 호전 기미를 보이는 금융시장 상황이다. 지난해 연일 패닉을 거듭했던 때와는 '일단 최악은 면하고 보자'는 위기감의 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의 순항 여부는 각 주체들의 설득과 대응은 물론, 앞으로 시장 상황에도 많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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