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왜 겨울이면, 겨울 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담 너머에 있는 봄맛을 흘깃거리게 될까 말이다. 봄맛이란 무얼까? 뭔가 파릇하고, 풋풋한 그런 맛이 봄맛인가? 새로 시작되는 조금은 덜 익은 그런 맛일까? 문득 내가 찾는 봄맛이 궁금해진다. 봄 하면 생각나는 산채나물 한 상도 좋지만, 더 새로운 맛을 원한다면...
■ 꽃부터 잎과 줄기까지 어여쁜 유채
봄이면 노랗게 제주 들판을 물들이는 유채. 유채는 꽃만 예쁜 줄 알았는데, 맛과 영양이 또 한몫 한단다. 나물로 무치기도, 국에 넣기도, 전을 부치기도 하는 유채가 지금 제주에는 시장마다 한창이다.
줄기가 튼실하고 잎도 도톰한 편인 유채를 맨입으로 씹어 보면, 파란 잔디밭을 뛰노는 것 같다. 풀 냄새, 푸릇한 맛이 입 안을 당장에 가득 채운다.
도톰한 질감은 씹는 맛을 더하는데, 살짝 데치거나 전으로 부친 후에도 숨이 크게 죽지 않아 아작아작 씹힌다. 그 도톰한 질감 때문에 김치 재료로도 손색이 없는데, 매콤하게 겉절이로 먹어 보면 긴긴 겨울 동안 움츠렸던 입맛이 살아난다.
부침개를 좋아하는 나는 유채를 한 움큼씩 넣고 부침 반죽을 만들었는데, 구수한 맛이 나도록 메밀가루를 써보라는 친정 엄마의 귀띔에 따라 그렇게 만들어 보았다.
유채 씹는 맛을 살리기 위해 반죽보다 유채의 양을 월등히 많게 떠서 팬에 익혔다. 메밀 반죽을 유채 틈새로만 살짝 보일 정도로 적게 하여 도톰하게 부쳤다.
따끈한 메밀 유채전을 양념장 찍어 한 입 먹어 보니 그 맛이 고급스럽다. 봄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자주 만들어 먹는 봄동 부침개와 비교해 보니, 일단 그 모양이 정갈하고 맛이 은은하다.
봄동의 고소하고 달달한 맛과는 또 다르게 쌉쌀한 맛이 나서 기름으로 부친 느끼함을 줄여준다. 은은한 단맛이 품위 있어서 한정식 코스의 초반에 내어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명나라 시대의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추정되는 유채는 어린 잎과 줄기에 영양이 많고 맛이 좋아서 오래 전부터 식용하던 식물. 주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다진 마늘, 파, 소금, 간장, 참기름을 기본으로 한 양념에 무쳐 내지만, 국물이 자작한 뚝배기 불고기나 버섯전골 등에 넣어도 파릇한 빛깔이 예쁘고 고기나 고기 국물과 맛도 어울린다.
유채의 쓴 맛이 거슬리면 살짝 데쳐서 찬 물에 잠깐 담가 두면 도움이 된다. 살짝 데친 유채를 찬물에 담갔다 건져서 반으로 썬 방울토마토, 얇게 썬 생 양송이, 생 피망 등과 섞어서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다. 일전에 소개 한 적이 있는 감귤 드레싱(귤즙, 간장, 과일식초, 참기름, 깨)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3센티 정도로 자른 유채를 올리브유, 다진 마늘, 다진 양파, 다진 토마토 등과 볶다가 토마토소스나 퓨레(토마토를 삶아서 으깬 다음 체에 거른 것)를 넣고 졸여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면 토스트 등에 발라 먹기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유채는 꽃이 곱고(봄에 유채 꽃전을 부쳐도 예쁘다) 잎이 맛있다는 것 외에 또 한 가지의 혜택을 주는 식물이다. 바로 기름을 짤 수 있다는 점인데, 특히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유채기름을 둘러 두부를 지져내면 향도 빛깔도 먹음직하다.
이제 부안에서도 식용유 제조를 위한 유채 농사를 짓는다 하니,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고급 올리브유처럼 우리 유채기름도 인기를 탔으면 한다.
■ 오키나와의 쌉싸래한 봄맛 '고야'
연중 온화한 기후를 가진 일본의 휴양지 오키나와 요리도 겨울을 잊게 하는 맛이다. 섬 요리 특유의 이색적인 맛이 특징인데, 특히 '고야'라는 이름의 쌉쌀한 채소는 오키나와 식단에 필수다.
오이처럼 혹은 피망처럼 생긴 아작거리는 채소인데, 그 맛의 중심은 쌉쌀함이다. 씨를 발라내고 한 입 크기로 썰어 다진 돼지고기나 햄, 으깬 두부와 달걀 등을 넣어가면서 소금 간하여 볶아내는데, 쌉쌀한 맛이 일품이다.
그러고 보면, 시고 달고 짜고 쓴 맛 가운데 어쩌면 우리의 감각을 확 깨워 주는 것은 무엇보다 쓴 맛이 아닐까 싶다. 봄에 먹는 산나물도 적당히 쌉싸래해야 참기름과 어울렸을 때 질척한 맛이 안 나고, 돼지 족을 삶아 만든 오키나와식 고기 요리를 먹을 때에도 쌉쌀한 맛의 고야를 먹은 뒤에야 입 안이 까끌까끌하면서 고기 맛이 더 좋다.
쌉싸래한 맛은 달큰하게 농익은 맛에 비해 깐깐하고 미숙해 보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끌린다. 지루한 겨울 입맛은 유채전에 쌉쌀한 순무김치를 곁들여 극복해 보자.
조미료와 기름으로 얼룩진 혀는 녹차를 자꾸 마셔서 까끌까끌하게 만들자. 맛 돌기가 스케일링되어 깨끗해진다. 봄에 나는 풋풋한 것들 먹을 준비를 지금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거다.
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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