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이기 이전에 하키선수에요."
길거리 헌팅으로 모델 제의까지 받은 훤칠한 22세의 여성에게서 나온 첫 마디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라면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여자로 보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는 왜 하키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주인공은 한국 여자하키의 대들보로 주목 받고 있는 한태정(평택시청)이다. 찬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8일 평택시 하키 전용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새해를 열고 있는 한태정을 만났다.
육상에서 하키로 전향한 뒤 그는 8년간 꿈꿔왔던 베이징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지난해 하키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는 활력을 찾았다.
"매원중학교 2학년 때 시드니올림픽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2008 베이징올림픽에는 국가대표가 돼서 저 무대를 누빌 수 있겠구나." 그 때부터 '하키소녀'의 마음 속에는 '나는 미래의 국가대표'라는 꿈이 자라났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2005년 세계주니어(21세 이하)선수권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그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후 발족근염의 일종인 모톤스 신경종(발가락의 신경이 커져 신발을 신으면 꽉 쪼이면서 생기는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부상에서 차츰 회복한 뒤 한태정은 베이징올림픽 출전 기회를 엿봤다. 한진수 평택시청 감독(당시 베이징올림픽 하키대표팀 코치)도 '애제자'의 대표팀 합류를 위해 한태정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하지만 통증이 남아있고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베이징행은 아쉽게 좌절됐다.
8년을 키워왔던 꿈을 잃어버린 한태정은 좌절감이 컸지만 하키를 사랑하는 마음까진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만 21세였던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들과 함께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해 중국(2-0)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 베스트플레이상도 받았다. 주장이었던 그는 "올림픽 진출 좌절 후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후배와 손발을 맞춘 마지막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해 더 없이 기뻤다"고 활짝 웃었다.
특히 그는 "선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맏언니 입장이 돼보니 후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며 흐뭇해 했다.
하키 스틱은 한태정에게 '남자친구'다. 그는 하키 스틱을 끌어안고 잘 정도로 하키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 촬영 도중에도 "하키 스틱을 안고 찍으면 안 될까요"라고 먼저 권할 정도다.
그는 "여럿이 함께 뛰어 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키에 호기심이 생겼다. 스피드 체력 파워 지구력 유연성 등을 모두 갖춰야 하는 매력적인 종목"이라며 "2012년 올림픽을 바라보기 보다는 부상 없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삶을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즐기고 싶다"고 앞으로의 소망을 밝혔다.
한 감독은 "포워드로서의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다. 173㎝의 보기 드문 장신에다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가 일품"이라고 한태정을 치켜세웠다.
평택=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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